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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Jun 07. 2020

시간이 준 선물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엄마  읽는 거 독사진  장만 찍어줘.”

아이에게 사정사정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디  읽는 독사진뿐이랴.
그냥 엄마 독사진  장을  찍어주더라.

처음으로 엄마랑  둘이 바닷가 여행을  우리 집 여섯 살 언니는, 바다 놀이 삼매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나는...
아이가  옆에서 꽁냥꽁냥 노는 모습을 보다가
책을 보다가
낮잠을 자다가
그렇게 해변에서 아이와 둘이 시간을 보내다가
그러다    사진  찍어달라고 해보고
 거절당하고.
나는 가끔 바닷물 셔틀 해드리고
그러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도 꿈결 같은 시간이었고,
그때 생각해도 꿈결 같았다.
마치 정현종 시인의 표현처럼, 시간에 이스트를 넣은 듯 말이다.


~ ~
아이에게서  거절을 당했다.
!
네가  찍어주면 내가 찍는다 !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다를 배경으로 예뻐 보이는 각도를 찾아 이리저리 핸드폰과 고개를 까딱거렸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사진이  찍혔나 제대로 확인도 하지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가방 안에 넣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짐과 사진을 정리하다가,
이날 송정해변에서 찍은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표적항암제인 허셉틴까지 표준치료를 마친 지 4개월이 지났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지금 어떠한 삶의 모양에 있더라도
결국 시간은  지나가 
새로운 삶의 모양으로 나를 안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겨울, 하필 아이 생일날 항암 탈모가 찾아왔었다. 그때 아이는 세 살이었다. 
1년이 넘는 항암치료를 받았고,
전신 항암을 마친 후로 조금씩 머리가 나기 시작해
표적 항암을 마치고 4개월이 지난 현재의 나는,
그냥,

곱슬 단발머리 아이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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