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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Jul 16. 2020

엄마가 미안해

독박육아 도치맘 에세이

"예쁘게 머리 묶고 가자. 엄마가 양갈래로 땋아줄게."


예쁜걸 유난히도 좋아하는 아이라, 아무리 바쁜 아침이어도 머리를 손질해준다고 하면 좋다고 달려올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의 반응은 뜨뜻 미지근이었다.

뾰로통한 아이를 잡아다 양갈래로 머리를 묶어주니, 제법 인물이 났다.

거울 앞에서 한참을 갸웃갸웃 자신을 보던 아이는, 약간 균형이 기운 곳을 찾아 좀 더 꽉 묶어 달라고 했다.

역시나 뾰로통하게.


"앞머리에 핀 하나만 딱 꽂으면 정말 예쁘겠는걸!

 다른 친구들은 다들 머리도 예쁘게 묶고 오더라.

 우리 딸도 조금만 단장하면 정말 예쁜데. 이젠 엄마가 예쁘게 꾸며줄게 기죽지 마."


사실 그랬다.

우리 집 어린이는 머리를 손질하고 안하고의 차이가 심하게 난다.

아이들을 엄청나게 예쁘게 꾸미고 단장해서 보내는 분위기의 기관도 아니어서, 엄마가 아프고 늘 기력이 없다는 핑계로 우리 집 어린이는 언제나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로 늘 어린이집에 갔다.

요즘, 새 기관에서 친구들을 사귀는 문제로 아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아요.

 친구들이 나 싫대요.

 친구들이 밀치고 때려요."


등원 첫날부터 선생님 예쁘다고 안기고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놀자고 말을 건네던 아이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이 상당했다. 그래도 한참 환상과 현실을 오갈 시기의 아이가 한 말임을 가감하고 들었음에도, 혹시나 내 아이가 왕따를 당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생일이 늦어 또래보다 어리고 말도 빈틈이 많아서 그런 걸까,

늘 수더분하게 입혀 보내서 아이들 보기에 매력적이지 않은 건가,

지난 기관에서 또래 없이 언니 오빠 동생들과 지내느라 동갑내기 또래랑 상호작용하는걸 못 배워서 그런가,

엄마가 아프다고 애가 눈치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요즘이다.


거울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자기 머리를 보고 있던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내일도 묶어줄까?"

상당히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싫은 거야 좋은 거야?


"나는 좋은데 엄마가 힘들잖아."


아이의 한 마디에 가슴이 울리도록 아팠다.

머리 묶여 보내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하긴, 한참 항암을 하던 시절에는 아침에 애 머리 빗겨서 등원시키는 것도 벅찼었다.

그땐 눈곱만 겨우 뗀 아이를 보내면 밥도 먹여주고 머리도 말끔하게 단장해주고 낮잠도 재워주는 어린이집이 있어서 살 수 있었다.

그랬다. 그때는.

어떻게든 피할 길은 있다며 엄마가 안도를 했던 그때, 그때부터 아이는 포기하고 눈치를 봤나 보다.




늘 낮잠을 자던 아이라, 아직은 낮잠 없이 또래들처럼 지내는 게 버거운 모양이다.

주로 몸이 지치고 힘들 오후 간식 이후부터 감정적으로 친구들과 충돌도 잦은 것 같아서, 오늘도 나는 아이를 친구들보다 일찍 하원 시켰다.

아이가 숨이 넘어가도록 꺽꺽 울어댔던 어제도 통화로 여러 이야기를 나눈 담임 선생님께서 또 피드백을 주셨다.

부모의 생각보다 아이는 잘 지내고 있으나, 기대보다는 좀 천천히 가는 것 같다.

그리고 오늘은 머리 땋은걸 자랑하며 친구들과 신나게 잘 놀았다고 한다.


 

네 딸은 그냥도 사랑스럽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가끔씩 보내봐.

애들이 생각보다 단순해서 먹을 거 하나 쥐어주면 금방 까먹더라고.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친구의 조언이 생각났다.

하긴 그동안 너무 날로 키운 건 맞지.

내일은 뭐라도 친구들과 나눠먹을 간식을 들려 보내봐야겠다.

그동안 아픈 엄마 눈치 보느라 기죽어 지낸 내 딸에게 미안해서라도 말이다.



엄마가 미안해.

만날 아프고 힘들다고 지친 모습 보여서 미안해.

기운 없다면서 엄마만 거울 앞에서 단장하고 너는 꾸며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이 마음을, 내 딸은 알까.





오늘 아침.

아이는 친구들이 좋아한다는 엘사 머리 (벼머리)를 양갈래로 하고

아이스크림을 꼭 끌어안고 등원을 했다.

아이스크림은 선생님 먼저 드리고 예쁘게 앉아있는 친구들만 주겠다고 했는데,

엄마가 시킨 대로 사이좋게 하나씩 다 나눠줬으려나.

하긴 선생님이 나눠주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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