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내 과거를 잊지 않고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페이스북이, 2년 전 오늘을 내게 알려줬다.
2년 전 오늘.
나는 만 서른다섯 살 생일을 딱 열흘 앞두고 암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 우리 집 아이는 만 세 살이었고, 일흔을 넘기신 아빠는 서울 어느 대형병원 관찰실에 계셨더랬다. 주로 임종을 앞두고 있거나 요양병원으로의 전원을 결정하는 방, 그 방에서 우리는 아빠를 포기할 것을 종용당했었다. 의료사고로 그리 되신 터라 의료진을 믿을 수 없었고 또 안 믿을 수도 없었다.
아빠를 포기할 수 없어서 인격이라는 게 없는 것 같은 레지던트 인턴들의 막말을 견디며 밤마다 아빠 병실에 가서 간호를 했던, 한편으로는 의료소송을 준비하고 낮에는 내가 갈 암병원을 알아보고 예약했던, 그랬던 시절이었다.
이듬해 봄에 아빠가 먼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또 한 해가 돌아 새해를 맞아서야 내 항암치료도 끝이 났다.
오늘은 표준치료를 마치고 처음 맞이하는 생일이다.
할아버지 빈소에서 사방팔방 뛰어다녔던 우리 집 어린이도 이제는 부쩍 자라서 제법 언니 티가 난다.
엄마의 생일이라고 한껏 들뜬 아이와 외출을 했다.
백화점에 나와 생일선물을 사고, 좀 좋은 카페에서 작고 예쁜 타르트를 주문했다.
손바닥만한 작고 예쁜 케이크라고 아이 앞에서 우겼다.
사실 나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고로 생일 케이크라 하면 초가 있어야 하기에 매장에서 생일 초 하나도 받았다.
혹시 초 하나가 있느냐 물었더니 정말 초 하나를 주셨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내 생일 (엄마 생일 말고) ...
뭐 이런 노래를 불러주는 아이와 작은 타르트 하나를 놓고 앉아있다가, 어떤 의미에선가는 이제부터 한 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서른여덟.
엄마 나이 여섯.
그리고, 다시 한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