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살다 보니 내가 내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이라는 게 병원에 있을 때뿐인 인생이 되어버렸다.
아, 같이 아이 영어책 읽어주는 카톡방 엄마들도 내 이름을 불러주기는 한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더욱 의지를 들여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
그나마 나는 병원에라도 다니니 다행인 걸까.
나는 언제나 내 이름으로 사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언제 어느 때에라도 내 이름으로 일을 하고 성과를 내고 돈을 버는 삶을 살고 싶었다. 설령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아이를 키우고, 항암 부작용으로부터 몸이 회복되는 걸 관찰해야 하는 암환자라 해도 말이다.
아, 나처럼 표준치료를 마친 암환자를 암경험자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표준 항암치료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독성 항암으로 나빠진 몸이 회복되는 걸 보는 것뿐이다.
힘든 시기를 지나고 나니, 미친 듯 일이 하고 싶어 졌다. 때마침 지원해볼 법한 단체에서 모집공고가 떴다. 한 이틀 고민을 하고 또 이틀 머리를 쥐어짜 서류를 넣었다.
행복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어린이집 앞 카페에 앉아 작성하고도 시간이 부족해 아이를 하원 시켜 앞에 앉혀놓고 마무리를 한 그런 입사지원서였지만, 정말 행복했다.
몇 년 사이에 뭐 이리 바뀌었는지.
입사서류 양식이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것에서 판이하게 달라져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행복했다.
칸칸이 채우며 느끼는 그 충만함.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정말 온전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였다. 그리고 산전수전 다 겪은 지금이라면 예전의 나보다 훨씬 더 유능하고 유연하게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들었다.
참 기분 좋은 착각이었다.
서류전형 발표일은 내 생일이었다.
합격자에 내 이름은 없었다.
그렇지. 이게 현실이지.
혹여나 부정 탈까 무서워 어디에 말도 못 했던걸 이제야 글로 써보려다가, 문득 암경험자의 연관검색어 따위가 궁금해졌다.
암경험자 사회복귀 같은 게 있을까 궁금했다.
역시나 없었다.
암경험자는 건강과 체중과 만성질환을 관리하며 사는 존재, 그뿐인가.
내가 재취업을 못하는 이유는 비단 내가 아팠던 사람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에 암투병으로 그 기간이 더 길어져 애매하게 나이 들고 애매하게 젊은, 진짜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인걸 사실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아직 살아갈 날이 구만리인데 이건 좀 가혹하지 않나 싶다.
아직도 나는 내 이름으로 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일이 하고 싶다.
사실 일을 해야 한다.
내 손으로 돈을 벌어 세금을 내야 한다.
근데 고학력 경력단절 애엄마에 암환자여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없다.
이렇게 애만 키우고 살 줄 알았으면 대학교 대학원 자격증에 들인 돈 모아 집을 샀다는 동네 엄마들의 우스갯소리가 생각나 가슴을 후벼 판다.
이래서 강단이 씨가 이력서 뒤쪽을 싹 지웠구나.
드라마 속 강단이 씨는 해피엔딩이던데, 과연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