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검사 결과 듣는 날이 언제지?”
심장기능 검사와 기타 검사들이 있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서둘러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병원으로 바삐 가야 했던 그런 날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일정이라는 건 늘 뜬구름이라,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며 울며 버티는 아이와 실랑이를 하다 보니 시간이 늦어버렸다.
하필 비는 쏟아지고, 뭐 이런 날이 다 있냐...
폭우 속을 뚫고 운전을 해 병원에 도착했다.
아이를 혼자 밖에 두고 검사를 받을 수 없어서 나는 오늘도 한없이 부탁을 하고 죄송한 사람이 된다.
“아저씨 벨루 알아요?”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고 조용히 책을 보겠다며 돌고래 책을 굳이 들고 병원에 따라온 아이였다.
큰소리 내지 않고 돌아다니지도 않아 고맙다고 해야 했을까. 움직이지 않는 대신 아이는 엄마가 기계 안에서 꼼짝 못 하는 동안 쉴 새 없이 종알종알 떠들었다.
아저씨 벨루는요 아쿠리움에 사는데요 엄마 아빠랑 헤어져서 슬프대요.
이 책은요 엄마가 사줬어요.
어 내가 이제 커서 엄마가 사주셨어요.
(근데 글자는 몰라요)
엄마가 큰 기계 안에 누워 자는지 죽은 건지 누워있는 동안, 넉살 좋은 우리 집 어린이는 간식도 받아먹고 핸드폰도 빌려서 봤더랬다.
검사를 마치고 내가 제일 처음 건넨 말은 “정말 죄송합니다.”였고, 그 긴 시간 동안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고 위험하지 않게 보호해주신 검사실 선생님의 인사는 “살펴가세요.”였다.
오늘도 아이가 등원을 하지 않았다고
폭우가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급하게 달려 주차까지 아침부터 너무나 하드코어였다는 내 하소연을 듣던 남편이 물었다. 검사 결과는 언제 듣느냐고.
그리고 한참 후에 그가 말을 이었다.
“미안해. 그날 휴가를 내서 같이 병원에 가주고 싶었는데-“
...
나는 늘 병원에 혼자 다녔다.
암이 의심된다는 첫 소견도 혼자 들었고
조직검사도 혼자 가서 하고 왔고
암이라는 말도 혼자 가서 듣고 왔다.
몸이 가장 힘든 전신 항암을 맞던 시기에는 전도사님이 동행해주셨지만, 그때를 제외하고는 늘 혼자였다. 아니, 종종 아이와 함께 혼자였다.
그도 그 나름 마음을 쓰고 최선을 다해 매일을 싸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남들처럼 내 병원 일정에 동행해주는 것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지금이 최선임을 알기에.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서운할 때가 있다.
내게 정말 필요한 순간에 있어주기만을 바라는 마음 때문일 테다.
정말 필요한 순간.
오늘은 딱 그런 날이었다.
나는 분명 병원에 도착을 했는데 주차를 할 수 없고, 검사실에서는 더 늦으면 검사를 못할 수 도 있다는 전화가 오던, 그런 날 말이다.
이상하게 이중주차해놓은 차를 밀고 주차를 하고, 나보다 걸음이 느린 아이의 손을 잡고 건물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달려야 했다고.
검사실에서 다른 보호자 없냐고 묻는데 너무 죄송하고 민망했다고.
오늘만큼은 보호자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주차장 입구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부러웠다고.
나는 오늘 그랬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여전히 우리의 대화는 끝이 맞을 듯 말듯하다.
나는 늘 검사받는 날이 가장 힘든데
그는 결과 듣는 날 곁에 있어주는 게 중요하다 생각하고,
나는 아이랑 둘이 매일매일 전쟁인데
그는 이런 우리와 아직도 연애 중이라 여기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