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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Sep 01. 2020

코로나 때문이 아니야

독박육아 도치맘 에세이

코로나 2.5단계 시행 이틀째이다.

탄력근무제로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는 남편을 보내고 아침부터 이불빨래를 했다.
평소 같았으면 집 앞 빨래방에 들고 가 빨래가 되는 동안 아이랑 차를 마시거나 그늘 아래에서 놀다가 왔을 텐데 이제는 그것도 할 수가 없다. 카페는 테이크아웃만 가능하고, 사람들이 계속 오가는 빨래방이라 내심 불안하다.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기한이 임박한 식자재 쿠폰을 사용하러 잠시 외출을 했다. 이틀 만에 집 밖으로 나온 아이가 신이나 계속 종알거린다.

"엄마, 코로나 때문에 우리가 여행도 못 가고 수영장도 못 가고 어린이집도 못 가는 거지요?"
"코로나 도깨비 때문에 친구들도 못 만나고, 교회도 못 가고, 휴가도 못 가는 거지요?"

지난 초여름 글램핑 이후로 당일치기 여행도 다녀오지 못한 우리 집 어린이는 휴가 앓이 중이었다. 아빠의 회사 업무가 한참 바쁜 시즌을 빗겨 우리도 휴가라는 걸 좀 다녀오자고 계획을 짜던 중이었는데, 느닷없이 이 상황이다.
갈비찜용 고기를 사서 주차장으로 가는 길, 코로나 19 상황을 지나는 맥도널드와 스타벅스의 풍경이 너무나 달라 순간 눈물이 났다.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부터 들락거렸던 그 스타벅스 매장이었다. 이젠 자주 가지도 않지만 그 공간에 얽힌 추억이라는 게 한가득인데, 의자란 의자는 다 치워놓고 주문 대기줄을 만들어 놓은 광경을 보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그런 스타벅스에 한 번 놀라고, 사람으로 가득한 맥도널드에 또 한 번 놀라고.
참 여러모로 놀라운 날이다.



코로나 19의 증상이라는 게 감기 같기도 하고 몸살 같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는 무증상이기도 해서, 이제는 길 가다 마주치는 누군가가 기침이라도 하면 덜컥 겁부터 난다. 혹여 내가 확진자가 되어 격리시설로 들어가게 되면 아이를 부탁할 곳이 마땅치 않아 잔뜩 날이 서 있는데, 하필 이 상황에 남편 회사에서 확진자가 나왔는지 전 직원 검사를 받으라는 통보가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 와중에 우리 곁을 지나가시는 저 어르신은 마스크를 쓰지 않으셨고, 주차장에서 마주친 남자는 턱스크 조차 하지 않은 채 기침을 하며 코를 후벼 팠다.



코로나 19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어 퍼지고 있다는 뉴스를 들은 게 지난 송구영신예배 즈음이었다.
그 예배 이후로 나는 교회 예배를 참석하지 않고 있다. 당연히 내 몸부터 조심해야 한다며 내 의사를 존중해줬던 교회도 전면 비대면 예배로 전환한 지 오래다. 남편은 필수인력으로 분류가 되는지, 모두가 재택근무를 해도 지하철을 타며 출퇴근을 해야 한다. 날이 뜨거워 아이와의 산책도 쉽지 않은 날씨인데,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우아한 말로 아이를 기관에 보내지 말라는 공지를 보내 등원도 시킬 수 없다. 우리 집이야 딸아이 하나랑 엄마랑 둘이서만 복작복작 어떻게든 견디면 된다지만, 사내아이 둘을 가정 보육하는 상황에 남편이 재택근무로 전환된 친구는 통화를 할 때마다 비명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뭐 방법이 있나. 버티거나 욕먹을 각오를 하고 나가는 거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실행되던 날.
자유가 중요하신 분들 덕분에 우리 가족 모두의 자유가 제한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
종교의 자유.

개인의 자유.
그 자유가 중요하고 소중한 어떤 이들 덕분에 우리 집 어린이는 유년기에 학습받을 권리와 뛰어 놀 자유를 잃었다.
"매일매일 집에서는 심심해요."
"엄마 나 우치원 가서 친구들 보고 싶어요."
매일 울고 징징거리는 아이를 끼고 있으니, 나는 내 일을 할 자유를 잃었다.
사실 그걸 좀 잃더라도 언제고 상황이 정리될 거라 믿고 견뎠는데, 벌써 다음 달이면 추석이다.
우한에서 사람들이 기침을 하며 쓰러지는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게 설날 즈음이었는데 말이다.
100일 후면 수능이다.
학교에 입학한 1학년들은 아직도 친구를 잘 모른다고 하고, 새 어린이집으로 옮긴 지 6개월이 다 되어가는 우리 집 어린이는 아직도 적응을 마치지 못했다.  적응을 할만하면 코로나 19로 휴원 하고, 적응을 했다 싶으니 또다시 휴원이라서.
아이를 재워놓고 저녁시간에 잠깐 나가 차 한잔 마시며 책을 보던 내 유일한 자유시간도 사라졌다.
이게 사는 건가.



‘이게 사는 건가’ 한참 생각에 잠겨 있는데, 코로나도깨비 때문에 앞으로 캠핑도 못 가고 여행도 못 가게 되는 것 아니냐며 아이가 계속 말을 건다.
"아니야, 언젠가는 끝나서 다시 예전처럼 놀러도 다니고 할 수 있을 거야."

"근데 코로나도깨비 때문은 아니야. 배려하지 않고 이기적인 사람들 때문이지."
...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는 이기적이라는 말을 아직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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