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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Oct 28. 2020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의 사랑은 다르다

우리가 언제부터 시집을 갔다고

언제부턴가 남편이 시가에서 받아오는 식재료들이 늘었다.
가장 최근에 받아온 시금치와 브로콜리도 그렇고, 지난여름에 받아온 마늘도 시어머니가 보내신 것이다. 신혼 초부터 오랫동안 시가와 사이가 좋지 못해 마음껏 무언가를 보내시지 못했고 받아오지 못했던 터라, 가끔 보면 남편이 그때의 화풀이를 하는 기분도 든다. 일례로 아이를 낳았을 때 시어머니께서 미역인지 미역국인지를 보내고 싶어 하셨다는데, 혹여 내가 화를 낼까 봐 남편이 중간에서 막았다나 어쨌다나. 그래도 이제는 왕래를 하고 사니, 이 인간이가 어머니 댁에 갈 때마다 식재료와 김을 그렇게 들고 온다.

어쨌든.
이렇게나 많은 마늘을 어떻게 보관하나 했더니, 다들 소쿠리에 담아 그늘지고 통풍이 좋은 곳에 둔다고 했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 집 거실에서 그나마 그늘이 지는 곳은 마늘 소쿠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소쿠리는 친정에서 안 쓰는 걸 가져왔다. 지금 사는 집에는 다용도실이 없다.)
뭔가 보기에는 좋지 못했지만, 확실히 집에 생마늘이 있으니 요리를 할 때마다 그때그때 까서 쓸 수 있어서 편하고 좋았다.
좋았다.

이래서 집에 마늘을 말려가며 까서 먹는구나 싶었다.

편하고 좋았는데, 벌레가 생겨서 더 이상 좋을 수가 없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집에 공벌레처럼 몸이 말리고 날아다니는 작은 벌레들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마늘을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도 참 센스가 없지. 하필 날을 잡아도 남편이 집에 없는 밤에 마늘을 까고 앉아있었네.

처음엔 별생각 없이 시작을 했는데, 까다 보니 신혼 초에 했던 다짐이 떠올랐다.
그날도 시어머니가 보내주신 마늘들을 혼자 앉아 깠었다. 다 까고 다져서 냉동실에 쟁여놨던 날이었다.
그날 다짐을 했다.
내가 두 번 다시 생마늘을 집에서 혼자 내 손으로 까면 성을 간다고.
아, 그걸 잊었네.


그래도 결혼한 지 1년도 안된 새댁과 7년인지 8년 인지된 애 엄마의 내공은 다를 테니, 이번은 다를 거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그렇게 철퍼덕 주저앉아 쥐가 나는 다리를 번갈아 펴가며 마늘을 깠다.


어차피 다리도 다쳐서 어디 나가지도 못하니까. 이참에 마늘이나 까자! 나를 도와줄 손이 없다는 것 빼고는 참 마늘까기 좋은 날이었다.

다만, 엄마가 다리를 다쳐 어디 나가지도 못하는 우리 집 어린이는 얼마나 심심했을까.
계속 엄마 주변을 서성이던 아이가 조용히 옆에 앉아있길래 고개를 들어보니 마늘을 까고 있었다.
손이 아릴 테니 하지 말라고 해도 아이는 분량의 1/5 가량을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도 깠다.
손이 아프면 그만하고 놀아도 된다고 이야기를 해줬는데, 아이는 한동안 저렇게 앉아 마늘 까기 놀이를 했다.

엄마가 하는 걸 같이 해서 뿌듯하다고 했다.
엄마를 도와줘서 행복하다고도 했던가.



그렇게 앉아 마늘을 까다가 문득 친정엄마는 절대 생마늘을 딸에게 보내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렇기도 하다.
우리 엄마는 호박잎을 줘도 손질하고 쪄서 보내주신다. 아이 먹일 시금치를 찾으면 시금치를 나물로 무쳐서 주시고 말이다. 마늘은 다진 마늘을 사서 나눠주셨더랬다. 며칠 전, 시어머니가 아이 먹이라고 보내신 시금치와 브로콜리를 전부 데쳐 냉동 보관하려고 정리하는 장면을 보신 친정엄마의 표정이 잠시 정지 상태였던 게 생각났다. 너희 시어머니는 왜 저렇게 많이 보내셨느냐며 잠시 정색을 했던 엄마의 그 표정이란.
"엄마, 삶아놓으니 또 그리 엄청나게 많지는 않아."

손녀딸 먹일거라고 많이 보내주신거지.

할머니 마음.

이게 내 눈치 없는 대답이었다.


시어머니의 성격을 잘 모르고, 시부모님과 트러블로 서로 고생이었던 신혼이었다면 분명 뭔가 말이 더 붙었을 것이다. 며느리라서 마늘을 이렇게 보낸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같은 여자로 이해가 되기 시작한 지금은 좀 다르다. 그저, 시어머니와 친정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신혼이나 지금이나 마늘까기는 여전히 힘이 들지만, 두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은 좀 나아졌나보다.

그러니 다음부터는  시어머니의 아들을 데리고 같이 마늘을 까고 시금치를 다듬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우리집 시어머니가 주시는 사랑의 방식은 손이  가서, 어머니의 아들이나 손녀딸의 도움을 받아야   같으니 말이다.



아이가 마늘을 까서 엄마를 도와줬다는  말에 남편은 우리 딸이 효녀라며  칭찬에 바빴다. 칭찬 끝에 꼭지가 살아있는 까다  마늘은 뭐냐 꼬투리를 잡기에, 그게 당신의 효녀 딸이  것이니 마무리는 효녀의 아버지가 하라고 시켰다.

아이가 엄마를 도와 마늘을 깠다는 소식에 양가 할머니들은 아이의  걱정만 하셨다.
어린것이 손이 아릴 텐데 괜찮냐고. 그걸  두고 봤냐고 타박도 받았다.
아이는 하다 말아서 말짱하고, 오히려  손이 쓰리고 아린데..
누구도  손을 걱정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손녀딸에 대한  할머니들의 사랑은 지점이 얼추 비슷한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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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다른 에세이와 엮어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가부장제는 싫어서”

작가 박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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