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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Sep 07. 2020

내 제사상에는 아메리카노와 평양냉면을 올려줘

페미니스트는 아닙니다만

의도는 없었다.
9월 달력을 보다가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 기일이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우리 할머니는 아빠가 초등학생 때 세상을 떠나셨다. 아빠의 말에 따르면, 많이 편찮으셨다는데 할아버지께서 병원은 데려가지 않고 그렇게 굿을 했더라고 한다. 전쟁 직후 그 시절에 자가용을 가지고 사셨던 분이 왜 그러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병원으로 모시고 갔더라면 분명 사셨을 거라고 아빠는 믿으셨다.

공교롭게도 할머니의 기일은 내 양력 생일과 날짜가 같다. 내 양력 생일에서 플러스를 마이너스로 바꾸면 된다. 독실한 개신교인 이셨던 부모님 덕분에 제사고 뭐고 모르고 자랐는지라 할머니 기일도 모르고 살았는데, 우연히 찾아본 족보에서 돌아가신 날짜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빠는 예수를 알고 믿고 가셨지만, 사실 우리 집안은 이틀 밤을 걸어 관악산 높은 곳에 있다던 절에서 불공을 드리고 제사를 모시던 집안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문득 내 조상님들은 밥도 절에서 얻어 드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절에서는 어떻게 간소하게 제사상을 차리나 궁금해 검색을 해봤을 뿐이었다.



내가 궁금했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 오늘의 검색에 걸린 기사가 꽤나 괜찮았다.
추석 차례에 관한 동아일보의 기사였다.
퇴계 이황의 종손 집안에서는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는 서두부터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결혼에 관한 제도와 관습도 사회의 변화에 따라 변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입장인데, “시대와 정서에 맞는 변화”가 없으면 예도 살아남을 수 없다니 이렇게나 멋진 말을 유학자의 인터뷰를 통해 접할 줄이야.


나는 제사를 없애고 시집 온 며느리다.
막내셨던 시아버지가 집안 항렬에서 유일하게 남은 아들이셔서 남편의 집에서 제사를 모셨다고 했다. 집안에 혼사가 끊긴 지 오래되어 남자 자손들은 전부 노총각들이고, 아버지 당신은 폐암 말기 선고를 받으신 상황인데,  큰아들이 진지하게 연애 중인 아가씨가 있다는 소식에 뭔가 결단이 서셨던 모양이다. 그 아가씨가 교회에 다닌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제사를 없애셨다. 물론 여기에는 고모님들의 공이 컸던 걸로 전해 들었다. 하지만 아직 남편은 제사를 모신다. 나고 자란 문화라는 게 있으니 그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고 모시는 최선의 방법 이리라.  

남편이 시동생과 함께 시아버지의 제사를 모시기로 했다는 말을 전했을 때 내 대답은 “그래. 아들들이 준비 다 해서 정성껏 해. 어머니 고생시키지 말고.”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뭐 이런 막돼먹은 큰며느리가 다 있느냐 싶겠지만, 나는 그렇게 배웠다. 내 집안 제사이니 우리가 하는 거라고.

우리 집은 교회에 다녀서 제사도 절도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큰집에서 명절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만큼은 남녀 성별 없이 다 같이 만들어 준비했다. 그래서 당연히 내 조상은 내가 모시는 거라 생각했다. 그게 제사 건 추모 건간에 말이다.


“이황의 후손인 유학자가 그러는데, 추석에는 차례를 안 지내도 된대. 그리고 제사상에 기름진 전 이런 거 올리는 건 유교식이 아니고 불교식이래.”
듣고 있어?
?


매번 명절이면 남편은 시어머니를 도와 전을 부쳐 온다. 아마 시아버지 제사상에도 올리고 (명절 당일에 돌아가셨다) 식구들이 나눠먹을 용도로 열심히 부쳤을 테다. 무남독녀 외동딸인 나는 쓸쓸하게 계실 부모님을 모신다는 명분으로 각자의 집안에서 명절을 보낸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다. 결혼하겠다고 세례를 받은 날라리 교인인 남편이 같이 교회에 와 예배라는 걸 차분히 드리고 말씀을 진지하게 들어주면 고마운 것처럼, 내가 절에 가서 촛불을 올리고 시아버지 묘소에 커피 한 잔 올려드리고 오면 그 역시 고마워하며,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 

시아버지와 나는 상극 중에서도 상극이었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 못마땅하고 무언가 어긋나고 불편했는데, 그래도 기분이 좋았던 순간이 있었다면 결혼하고 첫 명절에 돋보기 맞춰드렸던 날, 뭔가 또 갈등이 있었는데 일단 봉합하고 짜장면 시켜 먹었던 날, 그리고 시아버지 암병원 진료 따라가서 교수에게 한 소리 듣고 나와 같이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시아버지 묘소에 갈 때면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들고 간다. 제사상에 있는 물동이가 음복할 술 인걸 몰라서 냅다 싱크대에 버리기는 했어도, 하여간 나는 내 나름대로 진심이었다.



문득 내가 죽으면, 내가 그걸 흠향을 할지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내 밥상에는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평양냉면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나 죽으면 꼭 뜨거운 아메리카노랑 을밀대 평양냉면을 올려줘.”
가끔 피자나 빅맥도 좋아. 복숭아는 달고 말랑한 걸로 부탁해.
내 말을 듣고 한참 후 남편이 말했다.
“나도 생각을 해봤는데, 나는 꼭 꽃등심이랑 새우살이랑 삼겹살을 미리 굽지 말고 한점 한점 구워서 올려줘. 기름장 고추장이랑 청양고추도 빼먹지 말고.” 블라블라- 그 후로도 그는 먼 훗날 제사상 받아먹을 생각에 한참을 떠들었다.


자?
자는 거야?

분명 좀 전까지 떠들던 사람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진짜 잠이 든 것인지, 퇴계 집안의 차례 이야기가 불편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 난리통에도 명절은 오는가 보다. 




위에서 언급한 기사의 끝머리.



출처

https://www.donga.com/news/amp/all/20180921/92120447/1




결혼과 제도의 문제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제가 많이 보고 배운 작가님이 계십니다.

고 다녕 님이시죠.

그분처럼 내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고, 가끔씩 그 분과 주고받는 피드백이 참 좋았습니다.

브런치 활동에 권태기가 오고 한동안 뜨음 했던 사이, 다녕님께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더군요.

오랜만에 글을 넘겨가며 이웃의 소식을 보다가 그 소식을 접했을 때의 그 충격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네요.

그간 몇 편의 글을 올리긴 했습니다만, 이 글만은 써놓은지 일주일을 넘긴 이후에나 공유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공유할 생각을 하니 다녕 작가님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남겨진 가족의 마음과 앞날을 신께서 헤아려 돌봐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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