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언제부터 시집을 갔다고
명절에 친정엄마와 호캉스 가는 큰 며느리.
두번째 명절
https://brunch.co.kr/@mintc/166
"엄마. 역시 남이 해준 밥이 최고야. 그치?"
명절이라 더 그런 것 같아.
이번 명절에도 엄마와 호캉스를 나왔다.
점심과 저녁을 밖에서 사 먹고, 다음날 아침에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더니 온통 딸과 그의 가족들로 가득했다.
엄마와 딸
엄마와 딸들
딸과 그의 직계가족들
전부 딸들이네.
정초부터 명절에 호캉스 나온 가족들.
"딸이 최고야. 아들은 아무 소용이 없어"
문득 내가 딸아이를 임신했을 적, 남편과 시부모님께 들었던 말들이 생각났다.
경상도 경상도 내륙의 그 보수적인 그 집안에서 딸이 최고니까 첫 손은 꼭 딸이어야 한다니.
결국 나는 딸을 낳았고, 딸은 있으니 그래도 집안에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과연 딸이 최고일까.
왜 딸이 최고일까.
딸 부모는 비행기를 타고 아들 부모는 구르마를 끈다고 했던가.
내 주변에는 아들을 가져서 구르마를 끄는 부모도 없고 그저 딸을 가졌다는 이유만로 비행기를 타는 부모도 없다.
하지만 딸이랑 연휴 첫날부터 호텔에서 지내는 게 비행기를 타는 것 같은 거라면, 글쎄다.
그럼 아들들은 무얼 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 많은 아들들은 지금쯤 자신의 부모님 댁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효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차례 제사 인사 세배 같이 우리가 익히 당연한 것이라 배워 온, 자식으로서의 효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나 같은 딸은, 이렇게 내 부모에게 효를 다 할 뿐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조상 잘 만난 사람들은 연휴에 해외여행을 가고 조상덕 못 본 사람들이나 집에서 차례를 지낸다는 말이 회자되곤 한다. 이 조식 라운지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간이 조상님 덕분일까.
글쎄. 그보단 선택의 차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그래도 큰 며느리인데 시부모님이 뭐라 하지 않으셔?
친정은 명절 당일에 가면 되는 거잖아.
내가 명절에 가지 않는 큰며느리임을 아는 주변에서는 명절이 다가오면 매번 내게 이렇게 묻곤 한다.
남편이 그러라고 하느냐고.
시어머니가 뭐라 하지 않으시냐고.
뭐라 하긴 하셨다. 시아버지가 계시던 시절에는 매 명절마다 참담하다는 말씀을 남기시곤 하셨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혼자 계실 엄마를 더욱 잘 챙겨드리라는 말씀을 해주시지.
나는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비단 어머니께는 아들이 둘이 있고 우리 엄마는 달랑 딸 하나뿐이어서가 아니라, 원래 자기 부모를 먼저 챙기는 게 맞다.
결혼을 하고 첫 명절은 추석이었다.
시가에서 차례를 지내고 식사를 하고 친정으로 넘어가려는데 시아버지께서 뭐라 하셨다.
다녀올 곳이 많다고.
시할머니 산소도 가야 하고 시고모님 댁도 가야 하고 시외삼촌댁도 가야 한다고.
시할머니 산소는 올라가는 차들이 너무 많아 차를 돌려 나왔고,
시고모님 댁은 가는 길이 너무 막혀서 가다 말았고,
다녀온 곳이라고는 시외삼촌 댁뿐이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들러 친정에 도착하니 늦은 오후였다.
저녁도 안 먹고 가느냐 하시는 시아버지께 친정 부모님이 점심때부터 기다리고 계신다 말씀을 드리고서야 가라는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명절 인사드리러 우리 집을 찾은 외사촌 오빠들은 결혼 한 애가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느냐 묻는 게 인사였고,
부모님은 처음으로 자식 없이 두 내외가 덩그러니 앉아 드신 토란국이 너무나 허전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부모님은 그냥 그랬다고 말씀하신 것이었지만 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시아버지는 그다음 날 남편을 다시 소환하셨다. 그리고 그는 명절 내내 시가에 있었다.
아마 당신도 큰아들의 빈자리가 허전하셨던 것일 테다.
그때야 깨달았다.
한복 곱게 입고 온 가족이 세트로 움직여 명절 당일 늦게라도 오는 게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보기 좋은 보통의 가족"임을 주변에 보이기 위해 그렇게 명절마다 노력을 하고 끝나자마자 전쟁을 치르는 게 과연 보기 좋은 선택일까.
잘 사는 것 같아 보이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말고, 그냥 잘 살면 되는 것 아닌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효도인가?
아빠가 돌아가시고 이제는 친정엄마 혼자 남으셨다.
우리 엄마가 시어머니보다 연세도 열 살 가까이 많으시니 큰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 엄마가 먼저 세상을 떠나실 것이다. 그러니 이쪽에 시간이 더 부족하다.
그래서 내가 찾은 방법이라는 게 남편과 아이를 시어머니 댁에 보내고 나는 우리 엄마 집에 가는 명절이었다.
물론 이것도 아이가 젖먹이일 때는 불가능했다. 아이 때문에라도 나는 남편을 따라 시가에 가야 했는데, 그때마다 느꼈던 감정은, 나는 당신의 자손들을 편하게 보시기 위해 딸려가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집안사람이 아니었다. 아이 젖 먹이고 밥 챙기고 명절 일거리를 돕는 존재일 뿐.
아이가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후로 남편과 아이만 보냈다.
이미 이전에 명절마다 남편 혼자 갔던 시절이 있었음에도 그는 난색을 표했다. 그래도 아이 짐을 챙겨 차에 실어 놓으니 그도 포기한 듯했다. 혼자 아이를 돌보려니 힘들었는지 그는 아이를 데리고 친척집 투어를 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그렇게 내공이 쌓인 그는, 아이가 좀 자라자 아빠 투어를 만들어 지인과 <아빠 어디 가>를 찍고 돌아다닌다.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타당한지.
물론 내 주장에 수긍해준 남편 덕이지만, 어디를 먼저 가네 다툴 필요도 없고 각자 자신의 부모를 챙길 수 있고, 이 얼마나 좋은가.
...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눈을 들어보니 맞은편 할머니께서 우리 모녀를 응시하고 계신 게 보였다.
짧은 목례를 하며 저 집은 무슨 사연으로 엄마와 딸이 정초 댓바람부터 집 아닌 호텔을 선택했을까 궁금해졌다.
딸 가지면 연휴에 호텔에 오고
남이 차려준 식사를 하고
비행기도 타고
딸은 살갑고
역시 딸이 최고야
그래서 딸이 최고일까?
그저 아들이고 딸이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좋은 방식의 효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게 부러우시면 어른들이 변화를 선택하시면 된다.
그리고 아들이고 딸이고 그저 내 자식이 최고다.
어쨌든
효도는 셀프다.
이 글의 조회수가 올린지 하루 만에 만 건을 돌파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책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박민트씨의 브런치북 <우리가 언제부터 시집을 갔다고> 에 이어지는 글 입니다.
결혼과 가부장제에 대한 작가의 다른 글이 읽고 싶으신 분께,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