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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Dec 13. 2020

내 방을 찾습니다

독박육아 도치맘 에세이

드디어 내 시간이다.
남편이 자러 들어가고, 나 혼자 거실에 앉아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돌아왔다.


요즘은 남편이 재택근무로 집에 있다 보니 내가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던 자리를 뺏겨 버렸다. 식탁 안쪽 넓은 자리가 내 자리였는데 말이다.
사실 둘이 마주 앉아 노트북 한 대씩 놓고 일을 해도 될 테지만, 사실 남편은 큰 모니터까지 하나 더 올려놓는다. 거기에 가정 보육 중인 아이가 그림이라도 그리겠다고 올라오면 식탁 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다. 집에 서재가 없어도 불편함을 딱히 느끼지 못하고 살았었는데, 재택근무에 가정 보육이 현실로 닥치자 "자기만의 방"은 우리 부부의 소원이 되어 버렸다.
미니멀 라이프는 개뿔.
적당한 책상과 좋은 의자를 매일 찾아보고, 그걸 놓을 자리를 생각하는 게 하루 일과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아, 이게 사는 건가.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공간과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돈은 이제라도 조금씩 벌면 되는 거고, 일단 나에게는 나만의 공간과 시간이 사라져 버렸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어디에라도 자리를 잡고 앉아 글을 읽고 쓰던 나만의 시간이 없어진 것도 충격이 컸다. 오죽하면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 나와 차에 앉아 글을 쓸 생각을 했을까.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며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또다시 휴원에 들어갔다. 사실 지난 계절에는 휴원임에도 긴급 보육으로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내 일을 했었다. 집에서 엄마랑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보다야 그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확산세가 심상치 않은 지금은 도저히 긴급 보육을 신청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를 집에 데리고 있은지 어느덧 3주가 다 되어간다. 날은 춥고, 아이랑 같이 나가 잠시 앉아있을 카페도 하나 없는 이 현실이 너무나 가혹하다.


설상가상, 남편이 재택근무로 집에 있는 날은 날이 바짝 서 있는 남편의 눈치를 보느라 더욱 힘이 든다.
아이는 아빠가 집에서 일을 하니 너무 좋아서 수시로 곁에 가서 말을 걸고 놀아달라고 조르고, 남편은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깊어가는 미간 주름으로 소화하는데 가운데서 그걸 다 지켜보고 거리 유지를 시켜야 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어디 마땅히 갈 곳도 없는데, 남편이 집에 있는 주중 오후면 나는 아이를 데리고 어디로든 외출을 해야만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어서 저 작은방을 치우고 책상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남편에게 방을 만들어주고 내 테이블을 지키겠다는 일념일까, 그저 독박 육아로 매일 밖을 돌아야 하는 서러움 때문일까.



매일 밤, 엄마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혼자 차를 마시며 무언가를 하다 들어오는 게 못마땅한 우리 집 어린이가 오늘은 꼭 같이 차를 마시자고 고집을 부렸다. 오늘은 엄마와 같이 보이차를 마셔야만 잠을 자겠다고 말이다.
아이에게 차를 나눠주고 오랜만에 한글 파일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양치시켜놨으니 알아서 마시고 들어가 자겠거니.. 말이다. (제발 그러겠거니..)

​차를 마시며 책을 더 읽어달라고 조르던 아이가 이내 잠잠해졌다. 엄마가 노트북을 켜고 뭔가를 하거나 말거나 인 것 같다. 하긴, 낮에 일하던 남편이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싶었다.

그 사이 새로 바꾼 핸드폰에 엄마 얼굴을 갖다 대면 자동으로 열린다는 걸 깨달은 아이가 또 엄마 몰래 잠금을 해제했다. 엄마 몰래 살짝살짝 이것저것 보다가 후다닥 나에게 달려와 서두른다.
"엄마 이것 봐요. 이거 이거."

어린이집 알림장 어플이었다.
화면에는 아이가 못 간 날 동안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이 먹었을 음식 사진들이 가득했다. 대체 이걸 왜 같이 봐야 한다고 저 호들갑인지 이해를 못 하고 있는 엄마 곁에서 아이가 말을 이었다.

이거는 내가 좋아하는 거고. 이것도 내가 좋아하는 거고. 이것도 내가 좋아해서 많이 먹는 거고.

...
자기가 어린이집에 못 가서 저 맛있는 것들을 다 먹지 못한 게 슬프다고 했다.
"엄마 나 너무 슬퍼요. 나 내일은 꼭 우치원에 갈래요."
..
내일은 일요일인데.
교회도 전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려서, 유치부도 못 가는데.
경기도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3단계로 올린다는데.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엄마는 돌아오는 내일이 매일 깜깜하고 겁이 나는데.


'아, 그래도 긴급 보육 가는 친구들이 있는 것 같던데 나도 눈 딱 감고 보낼까' 마음에 갈등이 인다. 어차피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도 어디 마땅히 앉아있을 수 있는 곳도 없는데 말이다.
아직 오지도 않은 월요일의 일정을 혼자 고민하던 중이었다.

"내일 눈 온대!"
월요일은 정말 추울 거래.

남편이 방에서 나오며 내일의 날씨를 알려준다.
고민이 하나 더 늘었다. 눈이 오고 얼어붙은 길을 운전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가는 게 과연 나에게 유익일 것인가.
엄마가 또 하나의 고민을 얹은 사이, 아이가 말을 얹었다.
"오예! 그럼 엄마 내일 나 눈 오면 공원에서 썰매 밀어줘!"


아, 이게 사는 건가.
아이야. 엄마는 루돌프가 아니야.


너무 슬프다.
아직 엄마와 아내로서의 삶으로만 내 인생을 채우기는 싫어서, 내가 없이 살아가는 지금의 이 시간들이 너무나 슬프다.
조용한 곳에서 아무 말소리도 듣지 않고 앉아 책을 보고 싶다.
어차피 잘 챙겨 먹지도 않는 밥, 대충 건너뛰고 온전히 내가 즐거운 일에 몰입하는 상태를 다시 느껴보고 싶다.
뜨신 온천에 들어가 숨이 턱밑까지 찰 때까지 버텨보고도 싶다.
과연 이런 게 가능한 날이 다시 돌아올 것인가.
돌아오겠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삼시 세끼 3인 가족 밥순이에 눈 오는 날 인간 루돌프 일뿐이다.

그럼에도 나만의 테이블은 다시 돌아온다.
자기만의 방 나만의 책상.
비록 모두가 자는 새벽시간에야 만날 수 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나만의 방을 포기하지 않았다.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다.
나에게도 내 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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