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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Dec 20. 2020

아이가 자라서 아쉬운 순간들

도치맘 에세이

"엄마. 내가 엄마가 좋아하는 해바라기 찾아줄까?"
아이가 좋아하는 식물도감 책을 들고 따라와 한참을 종알거린다. 한참 급하게 저녁식사를 준비하느라 바쁜 중이라 제때 반응을 해주지 못했다. 찾아서 보여주겠거니 했던 마음이 있기도 했다.

"들었어?"
남편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내게 물었다.
해바라기라고 똑바로 이야기한 걸 들었느냐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해바라기라고 말을 했다.
몇 번이고 물어도 아이는 해바라기라고 답을 했다.



작년까지 보냈던 발도르프 어린이집은 아이들의 이름표를 사용하지 않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글자를 배울 시기가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아이의 어린이집 입소 집에는 아이의 이름표를 대체할 표식들이 들어있었다.
우리 집 어린이는 해바라기였다. 엄마가 좋아하는 꽃이기도 하고, 그 표식을 수를 놔서 보내야 했는지라 엄마가 가장 쉽게 만들어 보내기 쉬운 꽃이기도 해서였다.
꼭 꽃일 필요는 없었지만, 여하튼 우리 집 어린이의 이름표는 1년 동안 해바라기였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이 해바라기인 걸 정말 좋아했었다.

해바라기.

1년 전 아이 생일날에는 양재 꽃 시장에 가서 해바라기와 안개 꽃을 한 아름 사다가 어린이집에 꾸며놔주기도 했었다. 참 포근한 어느 겨울날이었다. 그날도 아이는 엄마가 황금성에 해라바기를 많이 가져다줘서 행복하다고 했었다.
그랬다. 우리 집 어린이는 해바라기를 해라바기 라고 했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에서 해바라기는 해라바기였고 메추리알은 공룡알이었다.
언제고 바른말 하는 날 오겠거니 여기며 우리는 그 시기의 귀여움을 즐겼다.


생강을 잔뜩 넣은 부타가쿠니를 만드는 중이었다.
계란을 삶으려다가 문득 집에 사다 놓은 메추리알이 있는 게 생각났다. 아이가 좋아하는 메추리알을 이번에 다 써야겠다는 계산이 섰다. 작고 큰 알들을 삶아 차가운 물에 담아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 좀 도와줘. 계란이랑 공룡알 좀 까줄래?"

심부름 거리가 생겼다는 사실에 신나서 뛰어오던 아이가 순간 멈춰 정색을 하며 말했다.
"엄마! 공룡알이 아니고 메추리알인데 엄마는 왜 공룡알이라고 해?"


아이가 걷기 시작하고 말을 시작할 무렵, 먹성이 좋은 우리 집 어린이는 배가 고프다는 표현을 가장 먼저 터득했다. 특히 아빠의 다리를 잡고 일어나 한 손으로 아빠를 툭툭 쳐서 부른 후, 자기 배를 동글동글 만지며 "아빠, 파요 파요" 했던 순간은 아직도 아이 아빠의 마음을 녹이는 추억이다.
어느 순간 아이가 정확하게 "배고파요. 밥 줘요."라고 말을 하던 날 느꼈던 그런 아쉬움이 또다시 살아나는 어느 겨울밤이다.


서두르지 않아도 아이는 때에 따라 스스로 자란다는 게 실감 나는 밤이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아이가 기저귀를 제때 뗄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던데, 나는 내가 아프고 힘들어서 매번 그 타이밍을 놓쳤는지라 걱정이었다. 사실 좀 늦게까지 밤 기저귀를 했는지라, 이러다 학교 갈 때까지 이러면 어쩌나 내심 불안했었다. 아이의 모든 행동과 발달을 똑똑하고 멍청하고로 구분 짓는 주변 어른들의 시선도 사실 신경 쓰였던 게 사실이기도 했다. 지능과는 상관없다는 걸 우리는 알지만, 그래도 이런 걸로 내 새끼가 멍청하다는 말을 듣는 건 기분 나쁜 일이니까. 그때마다 아이를 재촉하지 말라는 조언들을 붙잡고 기다렸고, 어느 날 기적처럼 아이는 밤기저귀를 거부했다.


아이가 자란다.

아이가 자란다는 걸 보면서도 실감하지 못하다가, 무언가에 한대 팡 얻어맞은 듯한 충격으로 체감하는 순간들이 온다.
신생아를 안고 밤이고 낮이고 잠을 자지 못해 죽을 것 같다고 우는 내게, 동네 아줌마 언니들이 이런 말을 해줬었다. 그래도 지금이 좋을 때라고.

지금부터 한 5년 동안 부모에게 보여주는 그 예쁜 짓을 부모는 평생 간직하며 그 기억으로 사는 거라고. 나는 아이에게 평생 효도를 받겠다는 야물딱진 욕심쟁이이지만, 아이의 어린 시절 귀여움이 엄청난 퍼센트로 마일리지처럼 쌓여 그걸 하나하나 깎아가며 살게 된다는 말이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저녁시간은 늘 바쁘다.

엄마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느라 바쁘고, 아빠는 하루를 마감하느라 바쁘고, 아이는 그런 아빠 엄마 틈에서 어떻게든 무엇으로든 같이 놀고 싶어서 바쁘다.
오늘은 해라바기와 해바라기로 관심을 얻었다는 걸 알아서인지 아이의 기분이 매우 좋다.
한껏 신이 난 아이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아빠는 무슨 꽃 좋아해? 내가 어어 꽃 책에서 찾아줄게!"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해라바기 가 아쉬운 아빠가 무리수를 뒀다.
아빠의 대답을 들은 딸은 한 시간이 넘도록 울었다.

"아빠 나빠! 아빠랑 흥! 안 놀아 흥! 왜 아빠는 왜 나한테 왜 내가 왜 못 찾는 걸 찾으라고 왜 응 왜 그래?"

문장 하나에 "왜"를 과하게 많이 넣는 아이가 언젠가는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하니, 이마저도 아쉽다.
어쨌든, 아이는 그날 밤이 지나도록 아빠가 찾아달라고 한 우담꽃 이 뭔지 계속 내게 물었다.
..
우담꽃.
아빠는 아이에게 우담바라를 좋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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