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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Mar 23. 2019

가임력 보존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곰을 만나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죽은 척해야 살아남는다는 동화였나 옛날이야기였나.

항암을 하게 되면 난소를 보호하기 위해 우산을 씌우는 것 같은 전처리를 한다고 들어서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졸라덱스라던가 졸라덱스라던가 졸라덱스라던가...
지난주 종양외과 첫 외래에서 출산을 더 할 생각이면 시험관 아기를 해 놓고 항암을 시작하는 편이 좋으니 여부를 결정하라는 말을 들었다.  
시험관 아기 난자 냉동 두둥 이건 뭐지.
신기술인가 ㅇ.ㅇ

주말을 지나 산부인과 외래에 오는 내내 갈팡질팡 마음이 오고 갔다.
‘보험 든다 생각하고 좀 더 젊고 쌩쌩한 난자를 세이브 해 놓으면 좋을 테니까.’
‘내가 걸린 암이 꽤 독한 녀석이던데 항암이 늦어지고 경과가 좋지 못하면 쓸모없는 일이 되지는 않을까.’
‘그래도 추후에 그렇게라도 임신을 하게 되면 난소가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유방암 치료에는 어떨지 몰라도 여성의 삶과 몸을 생각하면 폐경이 너무 이른 건 안 좋잖아.’
‘엄마 몸이 만신창이인데 아이 둘은, 아이들에게 못할 짓 아닐까.’...

아이는 못해도 둘 이상은 낳고 싶었다.
내가 외동이기도 하고, 하필 내 아이도 나 같은 외동딸이고, 나이가 들면서 나 혼자 짊어질 삶의 무게라는 게 버겁기도 했고, 아빠가 사경을 헤매실 때 기댈 곳이라고는 딸내미 하나뿐인 엄마가 너무 가여워 보였고.
먼 훗날, 저게 내 모습이겠구나 싶어 아찔하기도 했고.
그래서 올해엔 꼭 둘째를 임신하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현실은 암환자. 두둥....

난소 보호에 대해 이 병원 산부인과에서 들은 설명은 좀 달랐다.
쌩쌩하게 세포분열을 할수록 항암 할 때 공격받아 죽기 쉽기 때문에 일부러 재우는 약을 쓴다고 했다. 방어율이 100%는 못되며 나이가 들수록 방어율은 낮아지고, 지금 나는 이도 저도 결정하지 딱 애매한 지점에 있다고.
이도 저도 결정하기 딱 애매한 나이, 만 35세....

“교수님. 냉동난자? 저 그거 안 할래요.”

내가 무슨 뭐 아이를 더 낳아야 하는 엄청난 사명을 띠고 사는 것도 아니고, 생리 예정일 등의 이유로 난자 냉동을 하면 첫 항암 시작이 한 달 뒤로 넘어가는데 그렇게 불안하게 지내고 싶지도 않고, 현실적으로 하나만 낳아 키우기도 버겁고... 그렇잖아.

“그래요. 그럼 오늘 난소 재우는 주사 맞고 다음 달에 다시 봅시다. 출산은 치료 끝나고 방법을 찾아보는 걸로 하고.”...

곰을 만났을 때 죽은 척 누워있으면 정말 죽는다고 한다. 오히려 가능한 더 큰 몸짓으로 괴성을 지르며 대응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던가.
뭐 그렇다고.

항암이 곰은 아니니까.
‘그러니 난소야, 제발 코야코야 잘 자고 제발 잘 살아남아주련...’
뭐 이런 잡다한 생각을 하는 사이 주사가 배 위로 휙 지나갔다. 마치 독감 예방주사처럼.
난소 보호 주사라는 게 조올라게 아파서 졸라덱스라던데 이건 뭐지?

“저기요. 저 졸라덱스 맞는 거 아니에요?”
“똑같은 거예요. 루프린이라고 똑같은 거예요.”

루프린.
졸라덱스와 같은 작용을 하는 다른 주사제라고 했다. 부작용은 배에 멍울이 생길 수 있다나.
멍울은 모르겠고, 나는 속이 메스꺼운데..

아 몰라.
다음 주부터 항암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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