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지 May 02. 2019

가족의 범주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누가 또다시 자기 보고 왜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느냐고 하면 꺼지라고 해버려. 나도 그렇게 할게.”...

2차 항암은 좀 수월하게 넘어가나 했더니 하루 1 구토를 하고 있다.
간수치가 조금 올랐다더니 그래서인 건지.
항암 특권이라고 돈가스 먹었다가 토하고, 살만하다고 나가서 떡국 사 먹고 토하고.
그냥 집에서 흰 죽이랑 누룽지나 먹어야 하나보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이불속에서 뒹굴거리다가, 느닷없이 비상연락망이라는 걸 생각했다.
혹시나 내가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라도 가야 하는 상황이 되면, 저 남자는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

내가 외동이고 자손 작은 집 자손이라 식구 많은 남자와 결혼했는데, 이 상황에 우리 손을 잡아줄 이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게 참 웃프다.
좋은 일에는 그렇게도 뭉치더니.
생각해보니 정말 웃긴다.
좋은 일에는 누구라도 잘 뭉치잖아.
아, 곧 시동생이 결혼을 한다 하여 집안이 경사라고 했다.
그냥 남이네.

형수가 암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후, 힘들 때마다 형을 빌려가던 시동생은 소식을 끊었다.
너 힘들 때 나도 힘들었는데.
소개팅 나간다고 옷 사러 갈 때 형 빌려가고,
소개팅에서 차여서 슬퍼할 때 형 빌려가고,
목에 무슨 수술해서 목소리 안 나올 때, 시어머니 아시면 걱정하신다고 와 있을 때도 별 말 안 했는데.
나 그때 신혼이었고, 나 그때 산후우울이었는데.

지난 연말.
결혼 후 최고로 힘들었던 그 시절, 느닷없이 보신탕을 사 달라며 찾아온 시동생이 말했다.

“형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 나라면 이렇게 안 살아.”

아무리 집값이 저렴해도 그 동네에는 살고 싶지 않은걸 어쩌라고.
형수 나님이 무남독녀 외동딸이라 연로하신 부모님 곁에서 멀리 떠날 수 없는 걸 어쩌라고.
니 형이 좋아서 선택하고 우리가 감내하는 삶인데 어쩌라고.

하지만
“너나 잘 살아 이 새끼야.”라는 말을 내 남자는 하지 못했다.


...

암에 걸리고서야 그 가족에게서 몇 걸음 떨어져 살아 나를 지킬 명분을 얻었다.
나야 이제부터는 욕을 바가지로 먹어서라도 수명을 연장해야 하는 운명이라지만,
이 남자가 가진 몇 안 되는 자산이 그나마 형제인데, 이렇게 멀어지는 것인가 싶어 씁쓸하기도 하다.

그래도.
우리의 이 힘듦은 우리가 견뎌내는 거니까.
우리가 해 낼 거니까.

그리고 만약의 상황엔 가까운 이웃 누구누구에게 연락해. 내가 부탁 해 놓을게.


매거진의 이전글 너와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