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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Jun 02. 2019

괜찮지 않아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오늘은 너무 힘들고 우울했어. 일주일 정도 지나면 구토 방지제 없이도 밥 먹고 물 마시고 몸에 돌아다니는 항암제 느낌도 사라지고 해야 하는데, 이번엔 전혀 그러지 않아서.

여전히 물에서 썩은 단내가 나.

빨간약이 들어갈 때 따끔거리는데 그게 일주일 넘게 항문 요도 질 귓구멍 콧구멍 목구멍에 다 숨어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이 계속 따끔거려.

”네가 암을 이기나 지켜본다 이히히 내가 너 데리고 죽으러 갈 거야.” 이러고 있는 것 같아. 매번.

이젠 수술부위가 아닌 쪽도 콕콕 쑤셔.

오늘은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하다 소변을 지렸는데 아기가 그걸 보더니 엄마 왜 그러냐고 자꾸 물어서 진짜 난감했어. 애도 당황했는지 더욱 엄지손톱을 뜯어서 엄지는 사랑해주는 거라고 해줬더니, 엄지야 사랑해하면서 뜯다 잠들었어.

아까 동사무소에서는 내리 기침을 하다가 가래로 토를 해서 정말 부끄러웠어.

걷다가도 구역질하고 먹다가도 구역질하고 항암제 느낌이 들어서 또 구역질하고. 계속 양치질하면서 가래인지 뭔지를 빼내는데 속에서 신물이 올라와.

또 맞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죽을 것 같아.

이번에 받은 부작용 방지약들도 거의 다 먹어가고, 오늘 밤엔 항생제도 안 듣는 것 같아.

자기 보기에 그동안 내가 괜찮고 살만해 보였는지 모르겠는데, 나 힘든 증상들만 겨우 약으로 누르면서 다 견디고 있었어. 말로 다 설명하기 난감하고 부끄러워서 그냥 혼자 참고 견디고 있었다고.

누가 요즘 암 아무것도 아니네, 항암제가 좋게 잘 나오네, 견딜만할 거네 완치될 거네 짖어대거든 “닥치고 네가 해봐”라고는 못해주겠지.

많은 거 안 바랄게. 그냥 내가 멀쩡하지 못하고 씩씩하게 버틸 힘도 거의 소진했으며 우울하고 예민하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해....



내 투병소식을 들은 주변 누군가의 안부전화에 남편은 내가 항암주사 맞고 한 이삼일 정도만 고생하고 견딜만한 것 같다고 했다. 괜찮다고.

그 말이 너무나 서운했다.

나 괜찮지 않은데.

나, 부작용 약들 있는 대로 챙겨 먹으며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건데.

항암 다음날에도 운전해서 아이 등 하원 시키며 회사생활을 배려해준 게 저 사람 눈에는 살만한 걸로 보였나...?

3차 항암을 하고도 일주일이 훨씬 넘고, 처방받은 구토 방지제가 거의 다 바닥이 날 무렵 내 인내심도 바닥을 쳤다.

자존심이고 부끄러움이고 뭐고 너는 알아줘야 하지 않느냐며 장문의 편지를 써서 그에게 보냈다.

그날은 그가 회식을 한다며 밤 12시 넘어 들어온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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