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4차 맞은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지만, 성질머리가 급해 지금쯤 적어보는 빨간 항암산 정리.
<항암 전 준비>
#샴푸와 바스
성분 좋은 샴푸와 바스가 꼭 있어야 한다는 지인들의 추천으로 아베다 로즈메리 민트 샴푸와 스트레스 픽스를 준비했다. 샴푸는 겨울에 쓰기엔 너무 추운 향이었고, 바스는 어쩌다 생긴 천연비누를 더 자주 썼다.
#보습
중요 매우 중요. 대충 집에 있는 세타필이면 되겠거니 했는데 보습력이 부족했다. 세타필에 아기 발라주던 아쿠아퍼까지 사용해도 손이 못쓰게 건조해졌거든. 그나마 설거지할 때마다 고무장갑 끼고 해서 이 정도였지 싶다.
#프로폴리스 치약
구내염을 예방하기 위해 프로폴리스 치약을 준비했다. 별 탈 없이 잘 지나갔다. 사람에 따라 프로폴리스 스프레이도 준비한다던데, 집에 이미 스포이트 타입이 있어서 그냥 있는 걸 썼다. 사실 쓸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항암 부작용으로 잠 못 드는 기침으로 고생할 때는 이것도 안 들었으니까.
#탈모
탈모가 올 테니 당장 쓸 비니 하나와 모자를 구입했고, 가발은 쉐이빙 후에 직접 써보고 결정했다. 성격상 가발은 거의 착용 안 했으며, 쉐이빙하고 가발 살 때 같이 구입한 검정 얇은 여름용 비니에 겨울 털모자 조합으로 잘 쓰고 다니고 있다.
(겨울이라 겨울 비니도 춥고, 가발도 춥고.. 실내에선 비니+모자는 덥고.. 쓰고 벗고 하기에 딱 적당하다. 가끔 유심히 뚫어져라 보는 사람들이 있긴 하던데, 그러거나 말거나. 암환자 처음 봐요?)
#에보네일
손톱이 약하고 들리는 타입이라 급하게 주문했으나, 거의 안 썼다. 오히려 나보다 손발톱이 약한 애님께 종종 발라드리고.. 오늘도 발라드리고.. 허셉틴 때는 좀 다르려나...
<항암 후기>
#물 , 차, 음료수
특히 항암 맞고 온 날부터 한동안은 물먹는 하마로 빙의해야 한다. 물 맛이 비리고 상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항암 전에 포카리스웨트를 박스채로 구입해 놓고 물처럼 마셨다. 하루 2리터 이상.
3차부터는 홍차+생강차를 아침마다 마셨는데, 이 조합도 좋은 것 같다. 티팟에 넣고 계속 우려 마시면 상당한 양의 물을 마실 수 있다. (주로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나 루이보스를 마신다. 애님이 달라고 할 때가 있어서..)
#관심사
아프고 힘들다고 쉬고만 있으면 더 힘들다. 독박 육아가 죽을 듯 힘들다지만, 어린애가 있어서 어떻게든 버텨야 했고, 이것저것 관심사를 만들어 최대한 정신을 내 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니 순간순간 힐링이 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했다. 나는 항암을 계기로 꽃꽂이 수업과 경매 수업을 수강했다. (내 집이 갖고 싶다!!)
#도움
나는 혼자서도 잘해요가 주제곡인 외동딸이다. 무엇이든 혼자 후딱후딱 해 치우는 게 세상 편하고 효율적이어서, 항암 산도 그렇게 지날 수 있을 줄 알았다.
지나고 보니 그렇게는 도저히 못 할 짓이었다. 첫날은 “아 이래서 빨간약이군요?”라며 온갖 참견질은 다 하며 맞았던 인간이, 마지막 4차엔 주사가 꽂히자마자 구토를 세 번이나 했다. (그래도 구역질을 참는 것보다 차라리 다 토해버리니 속은 편하더라는. 주사실에 구토용 비닐이 준비되어 있었어요.)
그러니 병원 오갈 때라도, 아이 케어라도 하다못해 남는 반찬을 좀 나눠 받아먹더라도 누군가의 도움을 꼭 요청하고 받아야 한다.
동네방네 소문내고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다녀도, 꾸준히 내 손 잡아주는 이는 얼마 없다. 아픈 것도 서럽고 힘든데, 암 걸린 게 뭐 그리 부끄럽다고 숨기고 사서 고생할 필요 있을까? 살고 봐야지..
그러니 내가 살았나 죽었다 좀 들여다봐달라고. 그래야 집에 손님도 찾아오고, 나도 정신을 좀 더 차려 버틸 수 있다.
#식사. 식습관
뭐라도 먹어야 한다. 항암 특권이라고 뭐든 먹어도 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뭐라도 먹어야 하지만 가능하다면 내 몸에 좋은 것으로 가려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몸이 예민할수록.
(나는 원래 많이 먹어야 하루 두 끼나 겨우 먹던 인간이었다. 아침은 아메리카노 투샷이면 오케이던. 빵순이도 아니고, 딱히 선호하는 음식도 가리는 음식도 없이, 그냥 잘 안 먹는 사람)
항암을 하면서부터 녹즙은 만들어 마시다 포기했지만.. 최대한 삼시세끼 다 챙겨 먹고 과일과 알록달록 샐러드를 꾸준히 먹는 것에 집중했다.
아침에는 홍차+생강차+사과+뉴케어 혹은 애님이 드시다 남긴 한살림 시리얼을 먹고 점심 저녁에는 브로콜리와 파프리카와 딸기가 기본으로 들어간 샐러드를 먼저 먹고 식사를 시작했다.
딸기는, 항암 하면서부터 거의 달고 살았다. 꼭 임신하기 전에 먹어댔던 것처럼. 나중에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 베리류가 심장을 보호해준다고 한다. 몸이 살겠다고 제철과일인 딸기에 꽂혔나 보다.
집에 뉴케어와 누룽지와 된장은 꼭 있어야 하는 필수품이었다. 정말이지 항암 1차 때는 입 안에 모래가 돌아다니는지 된장 푼 누룽지 말고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2주 차쯤 되면 허리 골반 다리 등이 아프면서 갑자기 입맛이 조금씩 돌기 시작한다. ‘아, 호중구 방어하려나보다..’ 생각하며 입덧할 때처럼 생각나는 음식들을 찾아 먹었다. 좋은 단백질을 많이 먹어야 한대서, 누가 집으로 초대해 닭백숙을 해주면 그렇게 감사하고 좋았더랬다.
이걸 쓰고 있는 이 새벽에는... 타코가 먹고 싶네..
#주사 맞을 때
마지막 날에는 초콜릿을 먹어봤는데, 영 실패였다. 박하사탕에 얼음이 그나마 괜찮은 조합이었던 것 같으나, 나처럼 비위가 약하면 솔직히 그 얼음도 비리다. 어쩔 수가 없는 게... 몸이 그 빨간 주사의 느낌과 냄새를 기억하고 있어서 주사실 앞에서부터 힘들지만, 그 또한 금방 지나간다. 금방 맞으니까. 너무 힘들면 토해버리는 게 가장 나았다. 세 번 토하니 주사가 끝나 있었거든...
#난소 보호 주사
나는 졸라덱스 아닌 루프린을 맞고 있다. 담당 교수님 말씀으로는 AC항암 4차에 맞춰 루프린도 4차로 끝난다고 한다. 난소를 강제로 재워 항암제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아무 증상이 없다가 이제 슬슬 갱년기 증상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몸이 춥고 덥고, 자다 보면 더워서 깬다. 사실 이 새벽에도 그 이유로 깨있다. 이럴 땐 내 키에 맞게 아기 침대를 늘려놓아서 정말 다행이지 싶다. 서늘하게 혼자 잘 수 있거든.
루프린의 또 다른 부작용은 배에 잠시 멍울이 잡힐 수 있다고 하던데,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았다.
아! 복부에 맞는 피하주사다.
#뜸
유일하게 병원에 묻지도 않고 실천한 민간요법이다. 병원에서는 뭐든 다 하지 말라고 하니까, 이거라도 하고 싶었다. 화상만 안 입으면 되지 뭐!
어차피 요양병원 가면 거기서도 뜨는 뜸 아니던가.
나는 지역에 있는 고려수지침 협회를 찾아갔다. 동네 언니가 그곳에서 병을 나았는데, 거기에 오는 암환자들은 머리도 빠지지 않고 피부색도 변하지 않고 잘 버티더라는 말에 정신을 차려보니 맥을 짚고 뜸자리를 받고 뜸 상자를 사서 집에 와 있었다. (머리는 빠졌지만 얼굴색은 변하지 않았고, 위가 좋지 않은 사람임에도 큰 무리 없이 밀리지 않고 AC4차를 마쳤다)
감사하게도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항암을 할 때마다 찾아가 뜸자리를 새로 받았다.
1차 땐 온 아파트에 담배 피우지 말라고 방송이 나와 거의 못했고, 뜸 통을 만들고 난 이후인 2차 때엔 호중구 수치가 양호했고, 긴장이 풀리고 주변 일들에 정신이 팔려 제대로 뜸을 뜨지 않은 3차에는 그러니까 4차 맞을 때엔 호중구 방어만 겨우 했다. 병원에서야 수치 괜찮다고 항암 진행했지만 이전에 비하면 확 떨어진 수치.
생존자들을 만나며 알게 된 건, 그들 나름대로 치료를 보조하는 방법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도움도 되고 마음도 편한..
내 경우엔 서암뜸인 것 같다.
#탈모
드라마에서처럼 후드득후드득 그렇게 빠지는 건 줄 알았다. AC1차 14일째였나... 슬슬 머리가 흩날리고 빠지기 시작하더니 극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그날이 온 것이다. 탈모가 찾아왔다는 상실감보다 두통이 더 싫었던 나는, 당장 가발 가게로 예약 전화를 넣었다. 무료 쉐이빙. 어차피 가발이랑 비니랑 사야 하니까.
머리를 윙윙 밀고 각오를 했다. 온몸에 털이란 털은 다 빠진 다는걸 익히 들어 알고 있었거든.
4차를 마친 현재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모든 게 띄엄띄엄 있다. 머리를 예로 들면 앞은 반질반질하고 뒤는 띄엄띄엄 머리들이 자라 있다. 눈썹과 속눈썹도 아직 살아있는데, 이것도 다른 이들 후기를 보면 AC를 끝난 후에 한참 지나 빠지기도 한다 하니, 무엇 하나 예측을 할 수가 없네.
#변비
AC항암을 하면 변비약 두 종류를 기본으로 준다. 첫 항암 때는 그 변비약까지 먹어야 했다. 두 번째부터는 먹을 필요가 없었는데, 아마도 된장과 시래기 같은 음식, 나물을 억지로라도 먹어서 그 효과를 본 것 같다.
#약
부작용 약들 처방 내 준 데는 이유가 있는 거다. 버틸만하면 안 먹으려고 버텨보다 고생만 더 했다. 정말 변비약 빼고 구토방지에 관한 약은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3차 때는 그러고도 힘들어 결국 수액을 맞고서 회복했지만.
나는 호흡기가 약해서 매번 항암 후 기침으로 고생을 했다. 동네 병원들이 항암환자를 볼 기회가 적어서인지 항생제를 주지 않았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결국... 수액과 항생제 처방으로 쉽게 컨트롤되는 문제였다. 에라이ㅠ
#정신과 치료
몇 년 전에 같은 항암제 치료를 마친 지인들이 한결같이 추천한 것이 바로 정신과 상담 혹은 치료였다. 많이 우울할 거라고. 순간순간 자살충동이 들었다고. 내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었다.
빨간약의 따끔따끔한 느낌들이 내 몸 모든 구멍이라는 구멍마다 숨어 나를 지켜보고 비웃고 있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네가 얼마나 버티는지 지켜보겠다며 캬하하...
그래도 이래저래 어쩌다 보니 지나갔다.
적어도 이번 빨간 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