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지 Jul 01. 2019

팔 할이 어린이집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그간 너무나 감사해서요..

이번 주 금요일이면 아이가 2년 동안 다닌 어린이집을 졸업한다.
산후우울로 고생하면서도 절대 아이는 두 돌까지 가정보육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더랬다. 육아서가 그랬거든. 엄마가 최소한 두 돌까지는 데리고 있는 게 좋다고.
12개월 심리발달검사에서 불안정 분노 애착이 보이니 엄마가 숨통을 좀 틔어 산후우울을 해결해야 한다는 결과를 받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계속 일을 할 줄 알고 미리 가서 봐 뒀던 영아전담 가정형 어린이집에 입소할 수 있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민간이지만 재정지원도 많이 받고 한 곳에서 오래 운영하고 있는, 이미 동네 언니들에게 추천을 많이 받은 곳이었다.
원복도 가방도 사지 않고 물려 쓰는 희한한 어린이집.
그렇게 우리 집 언니는 인생 16개월 차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2년의 시간이 지났다.
걸음이 느리지만 스스로 걷겠다 고집을 부리던 아기는 고집 세고 수더분한 39개월 어린이가 되었다.

인생은 늘 예측불허라지만 너무나 과했던 시간이었다.
엄마의 정신이 산산이 부서지고 일상이 흔들리고 결국 암환자가 되었음에도 아이는 자신의 리듬을 가지고 나름 잘 지내온 시간이었다.
엄마가 어떤 상황이건 아이는 정해진 시간에서 정해진 시간까지 배불리 밥 먹고 신나게 숲에서 뛰어놀고 낮잠 자고 놀고먹고, 그 리듬은 깨지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훌쩍 자란 아이가 지내온 시간을 되새겨보니 어떻게라도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꽃시장으로 달려가 꽃다발들을 만들었다.
원장 선생님, 담임선생님, 시간연장 선생님 그리고 냠냠 선생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또래보다 많이 먹는 우리 아이, 애가 먹어봐야 얼마나 먹느냐며 늘 넉넉히 음식을 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친정아버지 간호로 제 투병으로 늦게 하원 할 때마다 힘내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좋은 말씀 해주신 것도요.
제가 수술하던 날, 수술이 늦어져 아이 아빠가 정말 늦게 하원 하러 갔는데도 그 시간까지 아이를 돌봐주시고 아이 케어는 걱정하지 말라고 해주신 것도 절대 못 잊을 거예요.
아이를 포근하게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돌봐주시고 또래보다 늦고 작은 아이를 넉넉히 기다려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던데, 제게는 팔 할이 어린이집이었네요.


가방은 꼭 깨끗하게 빨아서 반납할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암밍아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