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말의 기운과 8.88km의 행운

설레이는 첫 설 in 싱가포르

by mintchokyolate

싱가포르에 살며 처음으로 혼자 맞는 설날이다. 늘 여행을 갔거나, 한국에서 가족과 맞이했었다.


이곳의 음력 설(CNY)은 한국과는 사뭇 다른 화려함으로 가득하다

차이나타운은 온통 빨간 말 형상으로 뒤덮였다. 내가 좋아하는 빨간색과 역동적인 말의 만남이라니, 올해는 정말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명절을 맞아 많은 이들이 고향이나 여행지로 떠난 덕분에, 집 근처 거리는 낯선 정적에 잠겼다. 싱가포르의 설 연휴는 단 이틀(2/17~18)뿐이지만, 이 짧은 자유를 누리는 아침은 그 어느 때보다 설렌다


지난주에는 현지 친구들과 함께 '로헤이(Lo Hei)'라 불리는 독특한 전통을 체험했다. '유셩(Yu Sheng)'이라는 생선 샐러드를 젓가락으로 높이 던지며 복을 기원하는 이 의식은, 높이 던질수록 더 큰 행운이 온다는 믿음 덕에 모두가 진심으로 샐러드를 허공에 날려 보낸다 .


평소 다니던 짐(Gym)과 골프장마저 휴일인 오늘, 나는 8.88km를 달리는 것으로 하루의 포문을 열었다.

중화권에서 숫자 '8(ba)'은 돈을 벌다, 부자가 되다를 뜻하는 '发财' 에서 发(fa) 발음이 유사해 좋아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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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야"라는 주문을 외우며 8.88km를 완주하고 나니, 마치 2026년의 모든 복을 미리 선점한 듯한 기분 좋은 확신이 들었다.


오늘 뛰면서 찍은 수달 사진이다. 수달들도 고향에 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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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후 운 좋게 문을 연 사우나에서 몸을 데우고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빗줄기가 쏟아졌다.

그간의 지친 마음을 씻어내듯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아늑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빗소리와 나지막한 음악이 흐르는 창가에서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를 즐기며, 감사 일기를 쓰고 필사를 이어갔다.


행복은 결국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2026년. 안주하던 알을 깨고 나와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고, 하이록스 도전과 브런치 작가 데뷔라는 목표를 향해 정진하려 한다. 나의 이 기록들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하는 작은 창이 되기를 바라며, 풍요로운 한 해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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