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만족, 회복탄련성, 그리고 '나'라는 콘텐츠
요즘 싱가포르의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다. 곧 닥쳐올 무더위 전의 짧은 평화랄까. 하지만 창밖의 고요와 달리 세계 곳곳은 전쟁과 혼란으로 시끄럽다. 뉴스를 켜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이곳의 기류는 평온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평온함 속에서 미래에 대한 질문들이 고개를 든다.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며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만약 지금의 직장이 없다면 나는 어떻게 나를 증명하며 일해야 할까?'
결국 인간은 끝없이 증명하려는 동물 같다.
정답 없는 길을 홀로 개척하는 기분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외국 생활 5년 차, 이방인으로 살며 깨달은 삶의 생존 기술이 있다면 다음의 세 가지다. 자기 기준의 정립, 자기만족의 정의,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
한국에서의 삶은 명확한 '표준 이정표'가 있었다. 적정 연령대에 해야 할 일들, 내 집 마련이라는 안정이 주는 지표들. 우리는 그 이정표를 따라 속력을 내면 됐다. 하지만 낯선 땅에 던져진 이방인에게 절대적인 지표란 존재하지 않는다.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 또한 나만의 이정표를 새로 세워야 했다.
내가 정의하는 '부(富)'의 기준은 얼마인가? 나는 정착의 안정감을 원하는가, 유목의 자유를 원하는가? 내가 진정으로 만족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이 질문들에 답을 내리다 보면 때로 길을 잃거나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나기도 한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회복탄력성이다. 정답이 없는 길 위에서는 넘어지는 것이 당연하기에, 얼마나 빨리 털고 일어나 다음 스텝을 내딛느냐가 결국 노마드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내가 내린 마지막 결론은 결국 '콘텐츠', 즉 나만의 스토리텔링이다.
요즘 같은 AI 시대에는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지만, 그럴수록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가치는 한 개인의 고유한 경험과 문체다. 나는 지금 내 삶을 한 권의 책으로 쓴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장르가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방식이 에세이든 소설이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 내려가고 있느냐는 사실이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알고리즘에 나를 맡기지 않고, 나의 언어로 나의 세계를 정의하는 것. 디지털 노마드라는 도전 또한 결국 나라는 브랜드의 서사를 풍성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오늘도 나는 평온한 싱가포르의 햇살 아래서 나만의 지도를 그리고, 그 위에 문장을 채운다. 타인의 이정표에 기웃거리지 않고,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며 나만의 책을 한 페이지씩 넘겨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