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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콜라 Jul 07. 2024

나팔꽃

교실에서 나팔꽃 화분을 키운 적이 있다.

나팔꽃은 한살이 기간이 짧고, 신경 쓰지 않아도 쑥쑥 자라서

아이들과 함께 기르기 참 좋은 식물이다.


아이들은 각자 자신의 화분에 씨를 심고

물을 주며 의 나팔꽃이 잘 자라길 기다렸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팔꽃 화분에서는 싹이 트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생명의 탄생에 기뻐했다.


그중 유난히 싹이 잘 트지 않는 화분이 있었다.

J의 화분이었다.

J는 나팔꽃을 심는다고 했을 때부터 가장 기대했던 어린이였다.

씨는 어느 정도 깊이로 심는지,

물은 얼마나 주어야 하는지

나에게 하나하나 물어가며 정성으로 식물을 돌보았다.


다른 친구들의 화분에서 두 번째 잎들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

드디어 J의 화분에도 싹이 텄다.

J는 너무나 기뻐했다.

그 이후로도 매일 화분을 들여다보고 물을 주며 식물이 무럭무럭 자라길 기대했다.


J의 정성에 비해 J의 나팔꽃은 너무나 더디게 성장했다.

매일 좋은 말을 해주고

영양제를 주어도

다른 친구들의 나팔꽃이 1m의 긴 지지대를 휘감으며 쑥쑥 자라는 동안

J의 나팔꽃은 15cm 정도밖에 자라지 않았다.

친구들은 J의 나팔꽃과 자신의 나팔꽃을 비교하는 말들을 했다.

J는 "선생님 왜 제 나팔꽃은 안 자라요?"라며 속상해했다.

나도 원인을 알지 못해 그저 "자라는 속도가 다를 거야."라는 뻔한 답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더 지나도 길이가 더 자라지 않자

J와 나는 '혹시 나팔꽃 씨앗이 아니라 다른 씨앗을 심은 건 아닐까?'라는 의심마저 했다.

그래도 J는 금방 회복하고

"선생님 그래도 친구들은 잎이 하나씩 있는데 제 나팔꽃은 잎이 번갈아가면서 두 개씩 있어서 예뻐요!"라며 좋은 점을 찾아냈다.


어느덧 다른 나팔꽃들이 천장에 닿을 만큼 쭉쭉 뻗었을 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J의 나팔꽃에서 꽃봉오리가 생기더니

가장 먼저 나팔꽃이 활짝 피었다.

아이들은 모두 몰려가 처음 핀 나팔꽃을 구경했다.

J는 몹시 기뻐했다.

"선생님, 제 나팔꽃은 꽃을 빨리 피워내는데 힘을 쓰느라 천천히 자랐나 봐요!"

J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같은 크기의 화분에 같은 흙으로, 같은 장소에서 심고 길렀지만

제각기 크는 속도도, 길이도, 꽃이 피는 시기도 다른 나팔꽃들처럼

아이들도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뛰어도 손이 닿지 않던 철봉에 어느새 매달려 있기도 하고,

두 발 모아 뛰기도 어려워하던 아이가 이단 뛰기를 넘기도 한다.

자기만 생각하던 아이가 자신의 것을 흔쾌히 나누어 주기도 하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폭발하던 아이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배려하기도 한다.



그저 나만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저마다의 속도에 맞게

때에 따라 물을 주고

햇빛을 비춰주며

기다려주는 것.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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