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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콜라 Jun 26. 2024

일기에 담긴 마음

 지금은 사생활 침해라며 잘하지 않지만 숙제!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일기 쓰기'이다. 

그중에서도 제일은 아마 방학 숙제로 나간 일기 쓰기가 아닐까?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계획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에 비해 한참이나 더 긴 방학 기간을 마냥 놀다가 개학을 일주일 앞두고 부랴부랴 일기를 써내려 갔던 기억이 있다. 날씨도 엉망진창, 있었던 일도 뒤죽박죽이었던 기억이 얼핏 난다.

심지어 한 해는 날씨를 어차피 모르니 아예 날씨 부분은 적지 않은 적도 있다.

꾸역꾸역 끄집어낸 기억들로 일기장을 채워가는 것은 숙제 따위는 잊고 열심히 논 지난날에 대한 벌칙인 것 같기도 했다. '왜 선생님은 이런 것을 시킬까?' 원망하기도 했던 것 같다.


 처음 교사로 부임하여 2년 동안 같은 아이들을 맡게 되었다. 그때 가르친 H는 장난기가 많지만 알면 알수록 마음이 따뜻한 남학생이었다. 첫날 사진을 찍는데 괴상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사진을 찍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친구들을 도와주고 선생님을 걱정할 줄 아는 예쁜 말들을 해서 나에게 감동을 잔뜩 주던 아이였다.

 두 번째 해의 여름 방학이 되고 일기 다섯 편을 적어오는 것을 숙제로 내주었다. 매일 적는 것은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이미 나의 어린 시절을 통해 깨달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나마 글을 쓰지 않는 어린이들에게 글을 쓰게 하려는 교육적인 이유도 있었다.


 긴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는 날, 학생들은 자신들이 한 여름방학의 추억들과 숙제들을 나에게 가득 제출하였다. H도 자신이 한 숙제를 슬쩍 내밀고 하교하였다. 아이들이 모두 떠난 뒤 공책을 한 권씩 펼쳐 숙제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 아이들이 일기 쓰기가 힘들까 봐 예시로 내준 20가지의 일기의 주제 중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10가지’라는 것이 있었다. H는 이 주제로 글을 썼다. 

 첫 번째로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적고 그다음으로는 가족을 위한 꿈, 가지고 싶은 것 등 또박또박 자신이 이루고 싶은 10가지를 적어갔다. 초등학생다운 소소하기도 하고, 과하게 거창하기도 한 소원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10번째 이루고 싶은 것을 보다가 감동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마지막 10번째는 2년을 해주신 우리 4학년 선생님에게 화려한 집을 선물하고 싶어요.’



 당연히 이룰 수도 없고, 아마 글을 쓴 아이는 지금쯤 자신이 그때 어떤 글을 적었는지도 기억 못 하겠지만 

이 글은 아직도 나의 가장 기억에 남는 최애글이다.

이 글에 담긴 그 예쁜 마음이 아직도 나를 울리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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