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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콜라 Jul 02. 2024

상대적 시간

 O는 내가 만난 아이들 중 가장 미래가 걱정되는 아이였다.


O는 달리기를 좋아해서 늘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느라 바쁜 아이였다. 땀에 흠뻑 젖어 해사하게 짓던 미소가 기억에 남는 학생이다.

가정의 사정상 매우 심한 학습 부진 학생이었는데 6학년임에도 한글 읽기가 되지 않았다. 읽기를 시키면 5분 동안 가만히 있어서 기다려주다 결국 한 글자씩 알려주기도 했다. 간단한 더하기나 빼기도 하지 못했다. 다른 과목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O의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셨다. 그래서 그런지 O의 꿈도 농부였다.

왜 농부를 하고 싶냐고 물으면 "아빠가 농사나 지으래요."라고 당당히 이야기했다.

나는 O에게 "농사를 지으려면 돈 계산은 할 줄 알아야 해. 비료도 사고, 모종도 사고 해야지. 농사지은 것을 팔 때도 수학은 꼭 필요해!"라며 1년 동안 기본적인 돈계산은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그 해의 큰 목표로 잡았었다.

 그 해의 나는 최종적으로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아주 쉬운 계산은 할 수 있었지만 단위가 조금만 커지거나 복잡해지면 계산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가짜 돈, 바둑알, 손가락까지 모든 것을 동원하여 가르쳐보았지만 가게에서 만원을 내고 거스름돈을 얼마 받아야 하냐 묻는 나에게 "아줌마가 잔돈을 거슬러 주는 대로 받아요."라고 천진난만하게 대답하던 O를 이길 수가 없었다.

그저 이 해맑은 아이가, 이 순수한 아이가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길.

학교 생활을 즐거워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에 만족하며 한 해를 보냈다.


O를 졸업시키며 나는 O가 살고 있는 지역과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O와 헤어진 지 4년이 지날 무렵 갑자기 O가 연락이 왔다.

"선생님. 지금 어디 학교에 계세요?"

"선생님은 00초등학교에 있지!"

"제가 갈게요."


갑자기 찾아온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O가 살고 있는 지역과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꽤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오는 거야? 부모님께 허락받고 와야 해."

"허락받았어요! 저 다음 주 금요일에 갈게요!"


그리고 정말로 금요일 오후 O가 학교로 찾아왔다. 훌쩍 커버린 키에 몰라볼 뻔했지만 그 해사한 미소는 여전히 간직한 모습이었다.


O와 카페에 가서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를 하다가 O가 사는 지역으로 가는 버스가 빨리 끊긴다는 걸 알고 O에게 돌아가는 버스를 예매했는지 물었다. O는 돌아가는 버스가 몇 시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버스 어플을 깔아 일단 예매하자고 했다. O는 버스 어플을 깔더니 가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O에게 버스를 예매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버스를 타러 갔다.


걸어가며 O는 '비행기 정비사'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비행기 정비사가 어렵다면 자동차 정비사에도 관심이 있다고 했다. 장난기가 발동해 지나가는 자동차의 이름을 묻자 척척 대답했다. 자동차의 휠이나 범퍼, 외형을 보면 알 수 있단다.


그렇게 O를 보내고 나는 그때 같이 근무했던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오늘 O가 여기까지 혼자 찾아왔어. 그런데 O가 스스로 회원가입을 하더라고!"

그것은 나에게 엄청난 사건이었다. 엄청나게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힘들어했던 아이가

혼자 회원가입을 한다는 게,


돈을 계산하는 방법도 모르던 아이가

은행 계좌를 만들어 카드를 사용하고

모르는 도시에 혼자 누군가를 만나러 온다는 게,


그저 다른 사람이 하라는 직업을 하겠다던 아이가

자신의 관심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꿈을 계획하여 나아간다는 게,


내가 보지 못한 시간들 속에서 이 아이는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었나 보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들로 그 자리에 머무르며 흘려보낸 시간들이었지만

아이들의 시간은 매일 아이들에게 양분이 되어 그렇게 앞으로 흘러가고 있었나 보다.

나도 그렇게 자라고 싶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시간을 타고 흘러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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