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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콜라 Jun 30. 2024

기회

S의 꿈은 축구선수였다.

겨울에도 반팔 반바지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장을 누볐다. 긴 다리로 빠르게 공 잡고 달리는 S를 온전히 막을 수 있는 친구는 우리 학교에 존재하지 않았다.


S는 늘 "선생님~ 학교에 축구팀이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5, 6학년 전체 학생을 다 모아도 20명이 채 되지 않는 시골 학교에서 축구팀을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S가 축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지역 축구팀이 존재하여 유소년 축구팀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입단 테스트는 매일 있는 것이 아니었고, 이미 시기가 늦었으며, 가정의 사정상 멀리 떨어진 곳까지 훈련을 받으러 다닐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역 축구팀에서 이벤트 경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름을 맞이하여 '어린이 물축구 대회'가 열린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에 축구를 좋아하는 남학생들을 모아서 축구팀처럼 사진을 찍어 접수했다. 다행히 대부분의 아이들이 지역 아동센터를 다니고 있어 지역 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오고, 데려다 주기로 하셨다.


당일이 되고 아쉽게도 제대로 축구를 배워본 적 없는 우리 학교 어린이들은 시내 학교의 어린이들에게 밀려 큰 점수차로 예선 탈락을 하고 말았다.

물을 뚝뚝 흘리면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S는 "그래도 재미있었어요."라며 다른 팀의 경기를 아련하게 쳐다보았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의 인터뷰를 듣다 보면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다는 말이 참 많이 나온다.

'우연히 학교에 운동부가 있어서'

'친구 따라 우연히 동아리에 갔다가'

'체격이 좋다며 우연히 선생님 눈에 들어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학창 시절에 운동부가 있는 학교를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는 나는

'어쩌면 나도 세상의 많은 운동 중에 재능이 있는 것이 하나쯤은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그 운동을 접해볼 기회조차 없어서 모르지만 내 미래가 다르게 펼쳐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그처럼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어떤 것에 재능이 있는지 알아볼 기회조차 받지 못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것에 도전해 볼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를 보게 되면 어른으로서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점점 꿈이 없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건

어쩌면 꿈에 대해 알아보고 경험해 볼 기회조차, 시간조차 주지 않고 무작정 선택하게 한 우리의 탓일 것이다.


많은 즐거운 경험 속에서 자신이 어떤 것을 잘하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가득한.

결국엔 포기하게 되더라도 자신이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을 마음껏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넘쳐나는.

그 기회들 속에서 용기 있게 도전하고 실패하며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는 세상이 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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