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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콜라 Jun 26. 2024

오후반 학생

어젯밤 J에게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로 시작한 J의 카톡은 현재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렸고,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에 대해 알려왔다. 벌써 입시를 코앞에 둔 J는 내가 만난 아이들 중에서 좋은 쪽으로 가장 특이한 제자였다.  


 J는 우리 반이 아닌 옆 반, 그것도 다른 학년의 학생이었다. 우리 반 어린이의 형이 J의 친구였고, 자신의 친구를 따라 우리 반에 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매일 방과 후에 우리 반을 들렀다 가는 ‘오후반’ 학생이 되었다.(오후반이라는 이름도 이 아이가 처음 만들었다.) J는 매일 자신의 반에서 있었던 재미있었던 이야기, 자신의 일상을 떠들고, 우리 반에 남아있는 동생들과 함께 보드게임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진지하게 고민을 상담하기도 했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학교 오는 것을 너무나 즐거워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매일 점심시간에는 1학년 동생들과 놀아주며 한참을 쫓겨 다녀 땀을 잔뜩 흘렸고, 운동회 때는 머리를 묶고 귀여운 머리띠를 쓰며 열심히 응원을 주도했다. 우리 반에서 하는 3줄 글쓰기가 재미있어 보인다며 아침마다 3줄 글쓰기를 한 자신의 공책을 우리 반 교실에 내고 가기도 했다.(그 와중에 글을 잘 써서 늘 3줄만 쓰는 것에 실패했다.) 모든 선생님들을 좋아해서 졸업하기 전에는 자신과 친한 모든 선생님께 편지를 써야 한다며 편지를 2주 동안 쓰던 아이였다. 중학생이 되고 시험기간에 빨리 마치자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을 만나러 이 학교 저 학교 돌아다니느라 바빴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저녁을 먹고 짬이 나면 가끔 생각나는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안부를 이야기하던 아이였다.

 

 1월의 어느 날,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서울대를 갔다가 교대를 가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꿈을 말할 때는 장난인 줄 알았는데 중학교에 다닐 때도, 고등학교에 가서도 J는 진지하게 선생님이라는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그 꿈을 접게 되고 방황 후 새로운 진로를 찾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 꿈을 위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입시 준비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연락이었다. 

그렇게 학교를 좋아하던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지, 다른 사람들이 흔히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고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일지 헤아릴 수 없지만 조용히 그 아이의 선택을 응원하고 행복을 기도하기로 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다 보면 내가 본 아이들의 성장이 궁금할 때가 있다. 일 년간 열심히 기르고 내 손을 떠나보낸 아이들이 건강히 잘 지내고 있을까?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나쁜 길로 빠지진 않았겠지? 더 성장한 모습은 어떨까? 궁금한 적이 많다. 

 그러다 이렇게 가끔 들려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땐 많은 감정이 든다. 기특함, 안타까움, 대견함, 기쁨 등 형언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이 회오리치듯 찾아온다.


아이들이 아직도 매일매일 성장하고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게 참 대견하다.

아이들이 언제 어디서나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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