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에 태어난 지 2개월 된 먼치킨 수컷 고양이를 입양했다. 한 뼘 남짓한 크기의 솜털뭉치 같았다.
집에 데려온 지 처음 하룻 동안은 거실장 밑으로 들어가서 나오질 않았다. 살금살금 기어 나오다가도 사람이 가까이 가면 쏜살같이 도로 들어가 버리곤 했다. 녀석은 나름 신중하게 기웃거리며 조금씩 행동반경을 넓혀갔다.
집안 곳곳을 탐험하며 여전히 경계를 허물지 않은 와중에도 밥도 먹고 대소변도 가렸다. 태어난 지 60일 밖에 되지 않은 아기 고양이가 제 화장실을 찾아가서 싼다는 게 여간 신통방통한 게 아니었다.
우리 집에 온 지 나흘 째 되던 날이었다. 안방 침대 위에서 어슬렁거리던 녀석이 킁킁 냄새를 맡더니 그 자리에서 쉬를 하는 게 아닌가. 그 뒤로도 바닥에 두세 번 실수를 하길래 이거 큰일이다 싶었다.
하지만 이불 빨래를 하고 바닥을 닦으면서도 밉기는커녕 어찌 그리 예쁜지. 그 후로 다시는 실수하지 않는 게 또 신기하고 기특했다. 녀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두 달이라는 시간은 녀석과 사랑에 빠지기에 차고 넘쳤다.
자그마한 혀로 연분홍 젤리 같은 발바닥과 제 몸 털 정리하는 걸 보면 얼마나 깔끔한지 모른다. 그렇게 조신해 보이다가도 밤 10시가 넘어가면 돌변한다.
야행성이라 눈은 또렷해지고 몸에 활기가 생긴다. 양쪽 귀를 있는 힘껏 뒤로 곧추 세우고 소파 위에서 아래로, 마루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우다다다 뛰어다니는 걸 보면 그 귀여움에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다.
내 무릎이 제 침대인양 앞발을 가지런히 가슴에 모으고 사람처럼 등을 대고 누워 자는 모습엔 숨이 넘어갈 것 같다. 경계심이 많은 고양이가 나를 믿고 모든 걸 맡기며 잔다는 게 뿌듯하고 고맙기까지 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매일 먹이를 주고 똥오줌을 치워 준다.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화장실 청소까지. 아침저녁으로는 심심할까 봐 낚시 장난감으로 놀아 준다. 이뿐인가.
화장대와 벽지 모퉁이를 물어뜯어도, 바지에 매달려서 실밥이 터져 넝마가 돼도, 손과 발꿈치를 깨물어도 화나지 않고 밉지가 않다. 솔직히 순간적으로 울컥 치미는 게 없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그냥 그때뿐이다.
천진난만하게 제 잘못을 모르는 채 바닥에 드러눕거나, 뒤뚱거리며 다가와 바닥에 누워서 날 쳐다보면 도저히 안아 들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저 건강하고 즐겁게 자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런 게 바로 무조건적으로 아무런 기대 없이 사랑한다는 거로구나!'
우리 아이들이 떠올랐다. 나는 아이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기대하지 않고 사랑해 주었던가. 학교 성적부터 시작해서 이름 있는 대학, 안정적인 직장으로 조건을 붙이고 끊임없이 바라지 않았던가.
고양이에게처럼 아낌없이 사랑만 해줄 수는 없었을까. 던진 공을 물고 오는 것만으로도 엉덩이를 토닥이며 예쁘다고 해주면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왜 칭찬에 인색했는지.
머리가 희끗해진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아무런 조건도 기대도 없이 오롯이 사랑하는 법을 고양이에게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