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놀이로 불안감 낮추기
19개월 짐보리라는 놀이교실을 다시 등록했다. 문화센터는 너무 싫어하여 얼어있는 채로 한시간을 보내니, 오감발달이건 뮤직팡팡이건 어떤 수업도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또래들 만날 기회는 가져야 사회성이 발달되지 않을까 싶어 8개월 만에 다시 데려간 것이다. 11개월 걸음마를 할 때는 짐보리에 오면 그냥 제 세상을 만난것 마냥 누비고 다녔다. 오랜만에 만난 그 곳 선생님은 콩을 키가 크고 활달한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 곳에 가면 다시 다람쥐처럼 날뛰지 않을까 기대했던 난 콩을 반응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콩은 문화센터와 놀이터에서 보였던 모습 그대로 , 아이들과 선생님과 어른들을 두루 다 피해다녔고, 숨어서 소극적으로 놀다가 누구 한 사람만 마주쳐도 "엄마 엄마" 징징대며 내 손을 종일 놓지 못하고 , 애착인형을 꺼내라 짜증내고, 몇 번이나 안으라 요구했다. 선생님들은 워낙 적응이 오래 걸리는 아이들이 있다며 날 안심시켰지만, 한 달이 지나도 상황은 똑같았다. 오죽하면 수업시간 말고 자유롭게 노는 시간에도 공 두어개를 안고 내 무릎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다가 나왔다. 들고있던 공이 바닥에 떨어지면 짜증 섞인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뛰어 놀아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저 나만 찾고,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실제 그랬는지 나의 오해였는지 몰라도 , 다른 엄마들은 엉겨붙기만 하는 콩과 나를 힐끗 힐끗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나는 마마보이의 엄마로 보이겠지 하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짜증이 솟구쳤지만 , 나보다 아이감정이 더 중요시 해야한다는 전문가의 말을 떠올리며 도를 닦다가 왔다.
놀이터에서는 더욱 심했다. 아이들이 있는 곳은 아예 가지도 않았다. 특히 덩치가 좀 크고, 소리지는거나 뛰어다니는 활발한 남자아이들이 있으면 콩은 패닉에 빠졌다. 있는 힘들 다해 내 손을 끌어당기며 놀이터를 벗어나고자 했다. 다독거리며 좀더 놀자 하면 의자에 앉아 그저 다른 아이들을 구경했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엄마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콩을 쳐다보았다. 엄마들에게 내가 다가가 말은 건네려 하면, 콩은 또 긴장하여 내 손을 당기며 징징댔다.
가끔 보는 동네 아이의 엄마는 콩이 얌전해서 키우기가 쉽겠다며 날 부러워했다. 뭘 모르는 소리라며 집에서의 콩이 얼마나 180도 다른 아이인지 , 얼마나 활동량이 많고 신경질을 종일 내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로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였다. 그 말을 믿기에는, 아이는 절대 떨어질 수 없는 3초 본드로 붙여놓은 것처럼 내 몸에 붙어다니려 했다.
환경에 예민한 콩이니 낯선 집 보다는 우리집이 편할까싶어 이웃을 우리집에 초대했지만, 이웃집 아이와 엄마가 오니 마치 여기가 처음 보는 곳인냥 나에게 붙어서 엄마 엄마 거리며 안으라, 손잡아라 울먹였고. 옹아리 조차 하지않닸다. 평소 절제하지 못하는 과일을 꺼내도 긴장된 눈빛으로 포크째 들고있기만 했다. 집에서까지 이런 모습이라니... 기가 막히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유치원시절 간식시간에 먹음직스러운 핫도그가 나와도 먹지못하고 들고만 있던 나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콩이 20개월에서 21개월이 되기 직전, 나의 고민은 절정에 달하였다.
콩이 나처럼 악몽같은 유치원, 학교 생활을 하게 할 수는 없어.
내가 더 달라져보자.
유독 엄마에게 들러붙는 경향이 있으니, 짐보리는 아빠와 함께 수 차례 같이 가 보았다. 큰 차도가 없었다. 나는 아이가 얼어붙을 때마다 했던 "콩아, 괜찮아~."라고 다독거리던 말투를 바꿨다. "콩아, 낯설지? 그래도 같이 놀아보자!! 엄마가 먼저 해볼게." 하고 한 몸처럼 달라붙어 있는 아이의 손을 반 강제로 놓고 앞서 갔다. 콩은 처음에는 당황하고 징징거리며 따라와 다시 안으라 요구했지만, 같은 태도가 반복되자 징징거리는 시간이 줄어들고, 놀이기구에 조금 관심을 보였다.
어느 날 짐보리 자유 놀이 시간에 갔더니 , 아이는 역시 문앞에서부터 들어가지 않겠다고 생떼를 피웠다. 겨우 들어와서도, 놀고 있는 다른 아이가 한 명밖에 없었음에도 콩은 소극적인 모습으로 손을 잡고만 있었다. 그 날도 역시 평소처럼 아이들용 터널이 있었고 콩은 절대 그 곳에서는 터널을 통과하지 않았다. 집에서 까꿍 놀이를 질리도록 하는 콩의 모습이( 비록 몇시간 전이었지만) 그리웠다. 나는 "콩아, 엄마 터널들어갈게~!!"외치고는 터널안으로 몸을 구겨넣었다. 아이는 역시나 불안한 음성으로 "엄마, 엄마"를 작게 외치는 찰나 , 나는 터널을 완전히 통과하여, 터널의 반대방향에서 "콩아~엄마 여기 있다!콩이도 들어와~!"하고 터널 안으로 고개를 쑥 들이밀었다. 그러자 , 아이는 터널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더니, 마치 그 공간에 나와 콩 둘만 있는 것 처럼 착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마법의 순간같았다. 갑자기 콩은 집에서처럼 개구진 표정으로 깔깔댔다. 콩은 신나하며 터널을 통과하였고, 나는 콩이 그 착각 속에서 벗어나면 안된다는 듯 , 과하게 웃으며 "한번 더!"를 외치며 터널 내부로 다시 들어갔다. 다섯번 정도 연속 터널 놀이를 한 뒤, 콩은 그 기분 그대로 다른 놀이를 하였다. 기분 좋은 변화였다.
며칠 뒤, 짐보리 수업 시간을 가면서 나는 내심 지난 번 , 그 터널의 효과로 콩의 긴장감이 좀 사라지지 않았을까 기대감을 버릴 수 없었다. 아이는 문앞에서도 선뜻 들어와 선생님께 인사를 했고, 문을 열여 교실을 들어서는 순간, "우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짐보리 리모델링으로 내부에는 많은 놀이기구들이 있었고, 콩은 달려가 신나게 탐색을 했다. 그 날 처음으로 선생님이 다가와도 피하지 않았고, 점차 또래 아이들이 와도 당황하거나 팔을 벌려 안아달라 요구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난 후 , 아이들이 평소처럼 손과 발에 도장 찍어달라고 모여 앉았는데 , 나는 콩이 도장을 받을 리 없으나 습관적으로 "콩이도 도장받을까?"라고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콩이 그 아이들 끝에 앉더니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고, 감동적이던지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은 심정으로 사진을 연신 찍어댔다. 옹기종이 모여있는 아이들의 발. 나는 한동안 그 사진을 하루에 몇 번씩 들여다보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일. 나에게는 그것이 감동이며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