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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Aug 23. 2016

그대로 멈춰라

즐겁게 춤을 추다가.

아이를 키울수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또렷해지는 건 왜일까?

주황색으로 노을지는 초저녁 부엌일하는 할머니 치맛폭 냄새, 살이 찢어질 듯한 추운 날 할머니의 외투주머니에서 느꼈던 까실한 손, 학교 다녀온 뒤 엄마 일하는 곳에 가서  숙제하는 나에게 글씨 좀 또박또박 잘 쓰라 하던 엄마 잔소리.


아이로 인해 어린시절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니었다. 며칠 전, 친정엄마가 콩의 동영상에 대해 그룹채팅창에서 말했다. 그 동영상 속 콩은 짐보리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가 선생님이 다가오니, 눈이 커진 채 춤을 멈추고 손을 잡으라 하며 뒤로 숨어버리는 모습이었다.


엄마:"그거 보다가 N(언니)의 어린시절 생각이 나서 웃었지 뭐야."

나:"무슨 생각이 났는데?"

엄마:"N이  초등학교 입학식인지 애들 율동을 무심코 따라하다가 손을 올린 채로 내리지를 못하는 거야.하하"

나:"아 ... 그랬을만 하지."

엄마:"O(나)는 어떻고. 언젠가 모두가 앉았다가 일어나는 상황인데 앉아놓고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잖아."

언니: (침묵 후) 슬프다...


선택적함구증은 정말 나쁜 마법이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ㅡ하는 마법.

학교까지는 버스로 두 정거장이다. 버스를 타는 날은 버스타는 순간 그 마법이 시작되고 , 걸어가는 날은 반 정도 가고나서 마법이 시작된다. 성인이 된 뒤에도 일년에 두어번 그 동네를 가게 되는 일이 있었는데 , 그  시절의 감정이 또렷이 느껴져 신기했다.

학교에서는 누군가 말을 거는 것 보다, 혼자가 더 편했던 시절. 만약 그 때의 나를 만난다면 뭐라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이렇게 기특한 부자가 다있나. 남편에게 데리고 놀으라 하고 씻고 나왔더니 서로의 발과 배를 포개어 잠들어 있다. 나에게 이런 날이 다 오는구나. 콩은 절대 마법에 걸리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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