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집에서 제일 튼실한 검정색 장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숨이 턱턱 막히는 후텁지근한 날씨에 마스크를 코까지 쓰려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무척 오랜만에 맞이하는 나의 자유3시간. 어디조용한 곳에 가서 부족한 잠이나 자면 좋겠는데,잘 장소도 마땅치않다. 난 결국 서점에서 책 구경을 하기로 했다.
내가 잘 모르는 동네의 익숙하지 않은 k문고를 찾아가기로 했다. 코로나 때문인지 k문고는 한산했다. 실로 오랜만의 서점 나들이라 어느 코너를 먼저 가야 할지 마음이 정해지지 않은 나는 잠시 베스트셀러 앞에서 갈팡질팡 했다. 그러다가 문득, 여간해서는 잘 가지지 않는 시집 코너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마음을 결정하고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무거운 에코백도 바닥에 던져놓은 채 나는 나태주 시인의 글들에 푹 파묻혀있었다. 그리고 잠시 윤동주 시인과 이해인 수녀님의 작품도 읽고, 다시 나태주 시인의 산문집을 읽었다. 나태주 시인이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시절, 시 풀꽃을 쓰게 된 배경을 흐뭇하게 읽고 나서 시계를 보니, 어느새 60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삼십 대 후반의 나이에 갑자기 시에 호기심이 생겼다. 시는 내가 전혀 관심을 두지 않던 분야였는데 말이다. 마음을 울렁울렁 건드리는 글자들에 경외감이 든다. 시인들은 그 짧은 문장안에서, 이리도많은 의미와 감정이 담긴 묵직한 단어들을 고르기 위해 얼마나 고심 또 고심할까? 그러다가 갑자기 내가 부끄러워진다. 나는 감히 글을 쓸 자격이 있을까. 아무것도 아닌 내가 쓴 아무것도 아닌 글이 클릭 하나로 몇 백 명에게 읽힐 수 있는데 과연 괜찮은 걸까. 갑자기 글이라는 것이 멀게 느껴진다.
아쉬운 자유시간을 마무리하며, 두 권의 책을 선택했다. 나의 영원한 뮤즈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와 나태주 시인의 산문집 <부디 아프지 마라>.
밖으로 나오니 아직 태풍의 조짐은 전혀 없다. 무거운 우산이 무색하게도.
묵직한 에코백을 들춰매고
ㅡ태풍아 아직은 아니다. 제발 콩이의 하원 이후에 와라.
맘속으로 중얼대며 집으로 오는 길에 브런치 서랍을 열었는데 , 때마침 2017년10월22일에 쓴 태풍에 관한 일기가 눈에 들어온다.
2017.10.22 일기
그래.이 때는 이렇게 귀여웠지. 태어난 지 만 3년 만에 강한 바람을 눈으로 처음 확인한 날인가 보다. '아이의 네 살과 일곱 살은 이렇게 다르구나.'생각하며 아이의 하원을 기다렸다. 3년전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도 많이 달라졌겠지. 오늘따라 콩이가 훌쩍 큰 모습으로 하원 차량에서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