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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Aug 09. 2020

그래요, 나는 예민하고 불안해요

 누군가 나에게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묻는다면, 그것은 가장 난처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텔레비전이나 책으로 '선택적 함구증'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접할 수 있지만,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는 일반인들이 선택적 함구증의 존재를 잘 몰랐다. 7년 동안 유치원과 학교에서 말 한마디 못했던 자식을 둘이나 둔 우리 엄마도 몰랐으니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묻는다면, 그 시절 친구가 한 명도 없던 나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 시절 뭐가 하고 싶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무척 많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불량식품 사 먹기, 집에 오는 길 분식집에서 떡볶이 사 먹기, 고무줄놀이를 지희처럼 잘하기, 소풍 안 가고 집에 있기 등.

 선택적 함구증을 겪는 아이들은 단지 말이 안 나올 뿐 아니라, 문방구나 분식집에 자연스레 들어가는 일힘들다.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하다. 운동장에서의 고무줄놀이도 그렇다. 아이들 같이 하자고 나를 부르긴 했지만, 나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서는 언니와 단둘이 옥상의 빨랫줄 기둥에 고무줄을 묶어놓고 아이들을 흉내 냈다. 소풍은 변수가 많아서 곤욕이었다. 학교가 좋지는 않았지만 차라리 아무 말 없이 의자에 앉아있는 이 나았다. 아무도 내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말도 시키지 않기를 바랐다.


 집에서는 시끄럽게 떠들고, 남들 앞에서 말을 통 안 하는 우리 자매를 보고 엄마는 설마 우리 애들이 자폐증일그것만 걱정했더란다. 학교 담임 선생님들은 우리 자매 둘 다 말을 안 할 뿐이지, 공부는 잘하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안심시켰단다. 엄마는 어느 날, 짜장면을 시켜주며 얘기했다.

"거울을 보고, 나는 할 수 있다! 하고 주문을 외워. 그럼 자신감이 생길 거야."

엄마의  말은 틀림이 없겠으나, 그 말은 아주 먼 나라의 외국어같이 귀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대답 대신 짜장면을 후루룩 먹으며, 바닥에 깔려있는 신문의 글자들만 하염없이 눈으로 좇았다.


 내가 예민하고 불안도가 높다는 것은 아이를 낳고 나서 더욱 확실해졌다. 엄마도 까탈스럽게 자지러대는 손주를 품에 안으며 이야기했다.

 "난 너네가 그렇게 예민한 건지도 몰랐지 뭐야. 그러고 보니 한 번은 백일 전엔가? 너 업고 시장에 갔는데 네가 겁에 질린 듯 자지러지던 게 생각나네.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네 아들이 너 닮아 낯을 가리니까 다른 애들 보면 긴장해서 심하게 피할 수 있지. 뭘 그렇게 걱정해? 시간 지나면 다 괜찮아져. 잘 클 거야. 너네처럼."

나는 겉으로는 웃었지만, 마음속에 대답을 꾹꾹 눌러 담았다.

'엄마, 그건 잘 큰 게 아니에요. 작은 아이들에게 말못 하고, 친구도 없던  7년이란 세월은 단지 지나간 과거가 아니에요. 평생 갖고 갈 상처라고요.'

 첫째를 키울 때는 엄마가 나에게 무심했던 게 아닐까 서운했는데, 둘째를 낳아 키우면서 일을 하다 보니 그때의 엄마를 조금 알 것도 같다. 엄마는 말을 안 하는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아이 셋을 키우며 온종일 일을 하기에 몸도 정신도 황폐했던 것이다.


  치과를 운영하며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내 몸은 늘 바쁜데도, 육아도 일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좌절감에 빠질 때가 있다. 나를 챙기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 같이 느껴지는 날에는 서러워 울고 싶다가도, 그 날은 어린 시절 엄마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엄마를 향해 구겨진 마음이 조금 펴진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무의식 중에 계속해서 내 상처를 들여다보며 나를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힘들지만 하나씩 조심스레 내 안으로 끌어안으며 받아들이는 중이다. 숨기고 싶었던 선택적 함구증 시절 또한 나의 모습이고, 내가 남들보다 예민하다고. 내가 쉽게 불안하고 민감한 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그건 그냥 나의  모습 중 일부이다. 선택적 함구증에서 벗어난 12살 이후, 늘 남들 앞에서 쿨한 척 가면을 썼던 나는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이제 조금 솔직해지기로 했다.

 "난 꽤 예민해. 난 예민해서 작은 일에도 신경이 많이 곤두서. 겁도 많아. 쉽게 지쳐."

 그렇게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남들에게도 드러내고 나니, 내가 조금은 좋아졌다.


   보통의 육아가 원래 쉽지 않지만, 예민한 엄마가 예민한 아이를 키우는 일은 꽤 곤욕이다.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울고, 자면서도 몇 번이나 깨서 울고, 낯선 사람이 근처만 와도 겁에 질려 울고. 아이의 우는 소리에 지쳐 나도 같이 울었다. 두 돌이 되기 전부터도 놀이터에서 낯선 아이만 보면 피하고 얼어붙는 아이를 보며 , 혹여 나처럼 말 안 하는 아이가 될까 속이 타들어 갔다. 혹자는 나에게 억지로 아이를 거부감 느끼는 상황에 집어넣지 말라하고, 혹자는 애 엄마가 붙임성 있게 더 자주 남과 교류해야 한다고 한다. 내 아이를 보며, 혹시 나처럼 7년 동안 말을 안하는 아이로 크면 어쩌나 싶어 많은 고민과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를 많이 닮은 아들은 결국 유치원 입학 6개월 만에 자유롭게 말하고 뛰어 놀기 시작했다. 아이가 친구들과 노는 일상적인 모습에 이리도 감격스런 기분이 되다니!

 내가 둘째를 갖자고 했을 때 , 남편은 얘기했다.

 "여보, 솔직히 나는 우리 아들같이 예민하고 힘든 아이를 다시 키울 자신이 없어."

 나는 말했다.

 "나도 그건 정말 자신없어. 근데 우리 아들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둘째는 어떤 아이가 나와도, 아들보다는 나을거야. 설마 똑같은 아이가 나올리가 있겠어?"

  나는 5년 터울로 둘째를 낳았고, 역시 작은 소리에도 쉽게 놀라는 아이를 다독여주고, 밤에 자주 깨는 아이를 다시 재우고, 낯선 사람을 보면 우는 아이를 안아주고 있다. 가끔은 아이 우는 소리에 지쳐 나도 같이 울기도 하면서 말이다.


 나를 나답게 하는 것. 나의 아이들을 보며 배운다. "예민함이 없으면 내가 아니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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