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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Oct 07. 2020

내가 겪은 첫 장례식

할아버지는 바람을 타고.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러 스타벅스를 갔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테이블과 의자의 3분의 1 정도는 한쪽으로 치워놓아,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거리가 꽤 안정적으로 보였다. 잠시 여유가 있어, 조금 마시다가 갈 참으로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한 청년과  그 나이 또래 여자가 들어와서 내 앞쪽 테이블에 앉았다. 중국 억양이 심하게 섞인 영어를 쓰는 청년은 끊임없이 떠들고 있다.  분명 영어 과외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인데 여자는 거의 듣는 쪽이다. 간혹 oh really?, i am sorry 같은 대꾸를 해주긴 하지만. 남 얘기를 엿들으려 한 건 아닌데, 그 청년의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조금 화가 날 지경이었다. 청년은 지난주 토요일에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렀단다. 장례식 중 할머니의 몸에 덮어진 천을 들춰 얼굴을 확인했다는 대목에서 나는 갑자기 슬퍼진 마음으로 자리를 겼다. 그리고 옛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십오 년 전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시고 나서 천주교식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성당에서 할아버지를 위한 기도가 포함된 미사가 치러졌고, 장례식장에서 우리 식구는 모두 그 청년의 할머니 장례식 때처럼 덮여있던 천을 열어 할아버지의 얼굴을 확인했다. 장례를 진행하는 신부님은 기도를 하고  할아버지를 한 바퀴 돌며 얼굴을  만져도 된다고 했다. 나는 슬픔에 젖어있었지만 신부님의 그 말이 굉장히 이상하게 들렸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만지니.


 식구들의 행렬이 시작됐다. 나는 꽤 뒤쪽에 있어서 앞의 식구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친지들이 할아버지 앞에서 기도를 하고, 몇몇은 할아버지의 얼굴을 확인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우리 엄마의 차례. 엄마는 갑자기 오열을 하며 할아버지의 손과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버님! 아버님........ 엉엉엉."

할아버지의 친자식들도 할아버지의 몸을 쉽게 못 만지는데, 둘째 며느리인 엄마가 할아버지를 만지며 우는 모습은 그 자리에 있을 그 누구도  엄마의 그 마음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십수 년 동안 할아버지를 모시면서 할아버지에 대한 책임감, 다른 식구들에 대한 서운함, 할아버지와 엄마 사이의 남모를 정들 쌓여 할아버지의 차디찬 몸을 만지면서 아이 같은 울음이 터졌을 엄마. 눈물이 앞을 가리고 마음이 울렁거려, 엄마 뒤로 몇 명의 식구들이 더 지나갔는지는 확인을 못했다.  


 눈물을 닦고 보니, 우리 오빠 차례였다. 오빠도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더니 아이처럼 엉엉 울 몸을 숙다. 그리고 갑자기 할아버지의 차가운 볼에 살짝 입을 맞췄다. 그 모습을 본 나 함께 오열하며 몸을 떨었다. 할아버지를 모시는 동안, 우리 가족은 아무도 할아버지에게 살갑게 애정을 표현하지  못했다. 구들은 다정하지만, 서로에게 따뜻하게 스킨십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기쁨도 슬픔도 크게 표현하는 종류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적어도 서로의 앞에서는.


 이것이 내가 성인이 되어 처음 겪은 장례식이다. 그날의 경험은 나에게 큰 교훈을 가져다주었다. 장례식은 떠나는 사람 때문에 남은 사람들이  가슴 아프다. 그러나 그보다도 남아있는 들의 찢어진 마음을 지켜보는 일은 더욱 아프다 것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 뒤, 엄마와 맥주 한 잔 하며 할아버지 장례식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 나 근데, 아무도 못 믿을만한 일을 겪었어. 영화에서 사람이 죽으면 바람이나 흰나비로 표현할 때 있잖아. 나는 그게 다 거짓말인 줄 알았거든?"

 "응, 근데?"

 내가 이 얘기를 하면, 우리 엄마의 예상 답변은 '에이, 네가 꿈꾼 거 아냐?'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장례식 초반에 엄마가 나한테 집에서 옷인지 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무언가를 갖고 오라고 해서 지하철 타고 집에 갔었거든. 그때 정말 더운 여름이었잖아. 내가 집에 들어가서 거실 소파에 앉았는데 베란다 문이 한쪽 열려있었어. 그날 유독  고 땀이 났거든. 당연히 바람 한 점 없었어. 그런데 갑자기 거짓말처럼 바람이 휭 불면서 우리 집 흰 커튼이 잠깐 동안 마구 날리는 거야. 그러고 나서는 다시 커튼이 가만히 내려앉고, 다시는 날리지 않았어."

 "어머......."


  맥주를 한잔 마시고, 안주를 씹으며 나는 다시 얘기했다.

 "할아버지가 하늘나라 가시기 전에 , 우리 집을 제일 먼저 와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나는 이제 영화에서 사람이 죽으면 바람이 갑자기 불거나, 흰나비로 날니는 게 좀 믿어지는 거 있지?"

 내가 말을 마치고 엄마 얼굴을 보니, 엄마는 이미 시뻘게진 눈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에휴 참.......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나의 인생 첫 장례식은 "엄마와 오빠의 눈물. 그리고 바람"으로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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