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두꺼운 외투를 챙길걸 그랬나 보다. 그저 외출만 하기도 불안한 코로나 시대에 아들의 천식이 재발되었다. 독감접종 시기가 애매했나? 아니면 너무 외출이 잦았나? 생가하다가 또다시 자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관두기로 했다. 이미 지나간 일. 그럴 운명이지 않았을까. 어떻게 잘 관리해줄 것인가 그것만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아이가 아프면 케어를 못해준 내 탓인데, 굳이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천식환자는 바깥 활동을 줄여야 하므로 등원시키지 말라는 의사의 청천벽력 같은 말에 네,라고 했지만. 망아지 같이 날뛰어야 직성이 풀리는 방년 7세. 나가자는 성화에 동백섬까지 와서 산책을 짧게 했다.
"엄마, 오리 사진 찍어서 아빠한테 보내자."
"그래."
안경을 안 쓰고 나온 탓에 오리인지, 휴지조각인지 모를 무언가를 폰카메라로 대충 찍어 출근 중인 남편에게 보냈다.
<오리 사진을 지금 당장 아빠에게 보내란다.>
남편에게 보낸 사진
느릿느릿 아이와 마스크 너머의 찬기운을 마시며 걷고 있는데 답장이 왔다.
<갈매기겠지. 바다에 오리가. 상식적으로......>
혼자 피식 웃고, 문자를 보냈다.
<내가 안경이 없어서 흠흠. 콩이에게 정정해줄게.>
아이가 아픈 핑계로 일을 못 나가고 그 여느 때보다 여유로운 평일 아침. 며칠 밤 중이염으로 아픈 둘째의 칭얼거림으로 밤새 잠을 설쳤다. 우울은 우울을 낳는다. 잠을 설치는 와중에도 꿈처럼 나의 고민은 머릿속을 헤맨다. 나의 자궁근종 수술은 언제 하며, 아이들은 어떻게 누구에게 맡기지. 나는 그 고민을 며칠 밤새 한 것 같다. 졸리고 머리 아프고 요통이 심해졌지만, 오랜만에 둘째를 맡기고 첫째만 데리고 나오니 홀가분하기 그지없다. 지나가는 바람이 날 쓰다듬어준다.
'고생했어. 다 잘될 거야.'
조금 더 이 아침의 페이지를 천천히, 느긋하게 넘기다가 들어가야겠다. 들어가는 길에는 콩이에게 오리를 갈매기라고, 잊지 말고 정정해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