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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Oct 31. 2020

잠들기가 무서웠던 날들

전 죽고싶었던 적이 없는데요

 한 때 -한 때라고 하기에 너무 긴 시간, 자주- 우울증의 늪에 빠졌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말이다. 매일매일 하루 종일이 두려웠지만, 가장 무서웠던 시간은 잠들기 전이었다. 잠에서 깨었을 때, 또다시 어제와 같은 기분으로 하루가 시작되는 일은 절망적이었다. 그래서 잠들기가 무서웠다. 다시 리셋되지 않을까봐. 그렇다고 죽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살고 싶었다. 살아야 했다. 간혹 나에게 병이 생기거나 사고로 내가 죽으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들 때도, 내 새끼들은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기에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살고 싶었기 때문에 내가 우울증인 것을 몰랐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내 마음이 정상이 아니구나 싶었다. 신경정신과를 찾아가는 일이 너무 무서웠기에, 나는 신경정신과 쪽 전문 한의원을 찾아가 십 얼마 너 치의 검사들을 받았다. 내가 화병이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았는데, 중등도의 우울증이라는 소리는 의외여서 놀랐다.

 "전 한 번도 죽고 싶었던 적이 없는데요?"


 그곳은 심리상담사가 상주하고 있어, 한의사의 치료와 상담사의 상담치료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그 상담사는 어느 날 나에게 이야기했다.

"제가 보기에 민트님은 일시적으로 가벼운 우울감이 온 것이지, 별 문제는 아니에요. 금방 좋아지실 것 같아요."

 아주 밝은  표정으로 앳된 치료사가 얘기했을 때, 나는 웃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헛웃음이 나왔다. 치료사가 나가고 여느 때와 같이 담당 한의사가 들어와 침 치료를 시작할 때, 나는 울었다. 내가 상담사로부터 들은 소리를 그대로 읊으며.


 나는 매일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지옥이었는데. 긴 시간 터널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누구 마음대로 가벼운 것이란 말인가. 매일 눈을 뜨면 미칠 듯 불행했는데 왜 별 문제가 없다는 말인가. 상대는 나에게 희망을 주려 한 말인데 나는 더욱 절망을 느꼈다. 마치 내가 빠진 웅덩이는 너무 얕아서, 내가 그 웅덩이를 빠져나와도 지반의 높이는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소식처럼 들렸다.


 그 후에도 몇 번 나락으로 떨어졌다. 겉보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저 난 평범한 워킹맘이었다. 때로는 지인들에게도, 내 환자들에게도 아주 밝고 의욕적 이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가면을 쓰는 일은 내게 너무 에너지소모가 심했다. 최근에 심리상담을 다시 받고 있는데-물론 그곳은 아니고 다른 곳-  상담사가 '요즘 어떠냐'는 질문에 대답했다.

 "잠들기 전에, 내일이 오늘 같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은 없어요. 그것만으로도 전 꽤 좋아진 것 같아요."

 그 날, 나태주 시인의 산문집을 읽다가 와 닿은 문장이 있어 수첩에 메모해놨다.


<오래전부터 날마다 이 세상 첫날처럼 하루를 맞이하고, 이 세상 마지막 날처럼 하루를 정리하면서 살자 그랬다.>


 첫날처럼 하루를 맞이하고, 마지막 날처럼 하루를 정리한다니. 이런 태도가 연륜이자, 지혜가 아닐까. 내가 밤에 잠들 때, 내일에 대한 절망도 희망도 아닌, 그처럼 담담하게 이 세상 마지막 날처럼 하루를 정리하면서 살고 싶다. 에게 다시 밤이 두려워지는 때가 오면, 이 문장을 떠올려야지. 즘은 일의 아침이 무서운게 아니고, 새벽에 자꾸 깨는 둘째가 더 무서우니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침착하게, 담담하게, 첫날이자 마지막 날인것처럼 오늘을 보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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