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자에 관한 흥미로운 다큐를 보았다. 아프리카 초원의 암사자가 새끼들을 돌보다가 짜증스러운 듯, 나무를 타더니 가지 위에 앉아있다. 사자가 나무를 타는 장면은 낯설기도 하고,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다. 사자가 나무 위에 올라가는 것은 먼 곳의 먹이를 찾기 위함이 아니었다. 종일 젖먹이고 돌봐야 하는 아기사자들로부터 떨어져 자신만의 휴식을 갖기 위해서이다. 그러고 보니 사자의 표정이 여간 여유롭고 노곤한 게 아니다. 아기사자들은 어미 사자를 따라 나무를 타는 흉내를 내지만 너무 작아서 미끄러진다. 다른 암사자가 올라오니 잘 쉬던 사자는 다시 현실, 육아의 세계로 돌아간다. 아기들이 조금 더 커, 나무를 탈 수 있을 때가 되면 어미 사자는 안타깝게도 나무 위 휴식을 더 이상 맛볼 수 없단다.
얘들아 엄마 조금만 쉴게 @pixabay
그 어미 사자의 모습이 흡사 지금의 나와 같다. 나는 아이 낳고 처음으로 아이 둘에게서 떨어져 하루 6만 원짜리 숙소에서 피신 겸 요양 중이다.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될까. 나를 대신하여 다른 식구들이 매일 아이들 챙기느라 고생한다. 나는 곧 이 나무 아래로 내려가야 함을 알기에 마음의 죄책감을 애써 모른 척한다.크리스마스이브에 드디어 자궁근종을 떼어냈다. 오늘이 퇴원 후 이틀 째다.
이 혹을 떼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와 번민이 있었는가. 원래 계획대로라면 일 년 전 수술을 했을 텐데, 기가 막히게도 작년 겨울 입원을 일주일 남겨놓고 둘째가 폐렴으로 입원을 했다. 수술을 취소하며 생각했다. 하긴, 아픈 건 차치하더라도, 둘째는 아직 손이 너무 간다. 엄마 없이는 자려하지 않는다. 너무 어려서 좀 더 키우고, 둘째 떼어놓기 편할 때 하자 싶어 수술을 미련 없이 취소했더랬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도 마찬가지. 오히려 분리불안이 더 심해졌다. 떼어놓기 편할 때라는 건 오지 않는 모양이다. 조영제 CT를 보며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여기가 자궁인데, 이 혹이 꽉 차 있죠. 골반도 누르고 , 원래도 허리가 안 좋다고 하셨는데 , 이대로라면 요통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어요. 이제는 빨리 제거해야 해요."
"세상에. 정말 크네요."
하루 6만원짜리인데 뷰는 60만원 못지 않다.
결국 나는 크리스마스이브 때 그 혹을 떼었고, 수술부위 치유보다도 약물 부작용으로 꽤 고생하다가 퇴원을 하고, 이 숙소로 들어왔다. 우연치 않게도 아빠의 항암치료도 나의 수술과 같은 날이었다. 숙소에 온 첫날, 짐을 챙기고 있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고생했지? 부산 쪽도 춥지? 경기도는 정말 추워. 이제 다 끝났으니 집에 가서 애들이랑 운동하고 뛰어놀고 그래."
"하아...... 아빠, 저 한 달 동안 쉬어야 해요. 애기 들지도 말라네요. 그래서 지금 애들은 시댁 식구들이 봐주고 있고, 저는 숙소 며칠 잡았어요."
"어? 그러냐. 아빠는 항암약이 들어가니까 목에 혹이 흐물 해져. 피부가 다 헐었어. 그래도 오장육부 더럽히지 않고 혹에서 바로 피가 나오니 다행이지. 자꾸 피가 흐르니까 거즈에 살이 뭉그러져. 여자 생리대 제일 얇은 거 대고 있다니까. 그래야 거즈에 살점들이 안 떨어져 나오지. 남의 살 같은 느낌이지만 소독도 열심히 해주고 있어."
나는 캐리어 안의 내 생리대를 쳐다봤다. 천하의 우리 아빠가 목에 생리대라니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느껴졌다.
"아빠 고생에 비하면 제가 겪은 수술은 아무것도 아니죠."
혹이 터져서 밖으로 피가 나오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아빠가 그 사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빠는 내일부터 한... 닷새는 아주 심하게 앓을 거야. 그러고 나면 좀 나아질 거야, 다시."
아빠는 애써 힘 있고 밝게 말했다. 아빠의 두려움이 그 목소리에 가려지길 시도하는 것 같다. 나는 이제야 살 것 같은데 아빠는 예정된 고통을 마주하고 있다. 살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죄송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덜 고통스럽기를 기도하는 것 밖에.
아빠의 전화를 끊고, 나무 위의 사자가 된 기분으로 아이들의 동영상과 사진을 본다. 며칠 떨어져 있었더니 그 새 나의 아기사자들은 꽤 많이 컸구나. 손주들 보면 삶의 의욕이 생긴다는 아빠 말이 생각나 그날 밤, 사진과 동영상을 몇 개 보내주었다. 아빠의 고통은 이제 시작인지 며칠 째 카톡 확인도 못하고 있다. 아빠의 통증이 빨리 잦아들길 그리고 빨리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웃을 수 있길. 아빠가 아픈 뒤로 내 안의 원망이 사라지고 애정과 연민이 커지는 일이 애석하다. 그렇게 점점 더 애틋한 가족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