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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Dec 30. 2020

나무 위의 사자가 된 기분이야

암사자가  나무를 타고 올라간 이유

 오늘 사자에 관한 흥미로운 다큐를 보았다. 아프리카 초원의 암사자가 새끼들을 돌보다가 짜증스러운 듯, 나무를 타더니 가지 위에 앉아있다. 사자가 나무를 타는 장면은 낯설기도 하고,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다. 사자가 나무 위에 올라가는 것은 먼 곳의 먹이를 찾기 위함이 아니었다. 종일 젖 먹이고 돌봐야 하는 아기사자들로부터 떨어져 자신만의 휴식을 갖기 위해서이다. 그러고 보니 사자의 표정이 여간 여유롭고 노곤한 게 아니다. 아기사자들은 어미 사자를 따라 나무를 타는 흉내를 내지만 너무 작아서 미끄러진다. 다른 암사자가 올라오니 잘 쉬던 사자는 다시 현실, 육아의 세계로 돌아간다. 아기들이 조금 더 커, 나무를 탈 수 있을 때가 되면 어미 사자는 안타깝게도 나무 위 휴식을 더 이상 맛볼 수 없단다.

 

얘들아 엄마 조금만 쉴게 @pixabay


 그 어미 사자의 모습이 흡사 지금의 나와 같다. 나는 아이 낳고 처음으로 아이 둘에게서 떨어져 하루 6만 원짜리 숙소에서 피신 겸 요양 중이다.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될까. 나를 대신하여 다른 식구들이 매일 아이들 챙기느라 고생한다.  나는 곧 이 나무 아래로 내려가야 함을 알기에 마음의 죄책감을 애써 모른 척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드디어 자궁근종을 떼어냈다. 오늘이 퇴원 후 이틀 째다.


 이 혹을 떼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와 번민 있었는가. 원래 계획대로라면 일 년 전 수술을 했을 텐데, 기가 막히게도 작년 겨울 입원을 일주일 남겨놓고 둘째가 폐렴으로 입원을 했다. 수술을 취소하며 생각했다. 하긴, 아픈 건 차치하더라도, 둘째는 아직 손이 너무 다. 엄마 없이는 자려하지 않는다. 너무 어려서 좀 더 키우고, 둘째 떼어놓기 편할 때 하자 싶어 수술을 미련 없이 취소했더랬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도 마찬가지. 오히려 분리불안이 더 심해졌다. 떼어놓기 편할 때라는 건 오지 않는 모양이다. 조영제 CT를 보며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여기가 자궁인데, 이 혹이 꽉 차 있죠. 골반도 누르고 , 원래도 허리가 안 좋다고 하셨는데 , 이대로라면 요통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어요. 이제는 빨리 제거해야 해요."

"세상에. 정말 크네요."

하루 6만원짜리인데 뷰는 60만원 못지 않다.


 결국 나는 크리스마스이브 때 그 혹을 떼었고, 수술부위 치유보다도 약물 부작용으로 꽤 고생하다가 퇴원을 하고, 이 숙소로 들어왔다.  우연치 않게도 아빠의 항암치료도 나의 수술과 같은 날이었다.  숙소에 온 첫날, 짐을 챙기고 있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고생했지? 부산 쪽도 춥지? 경기도는 정말 추워. 이제 다 끝났으니 집에 가서 애들이랑 운동하고 뛰어놀고 그래."

"하아...... 아빠, 저 한 달 동안 쉬어야 해요. 애기 들지도 말라네요. 그래서 지금 애들은 시댁 식구들이 봐주고 있고, 저는 숙소  며칠 잡았어요."

"어? 그러냐. 아빠는 항암약이 들어가니까 목에 혹이 흐물 해져. 피부가 다 헐었어. 그래도 오장육부 더럽히지 않고 혹에서 바로 피가 나오니 다행이지. 자꾸 피가 흐르니까 거즈에 살이 뭉그러져. 여자 생리대 제일 얇은 거 대고 있다니까. 그래야 거즈에 살점들이 안 떨어져 나오지. 남의 살 같은 느낌이지만 소독도 열심히 해주고 있어."

나는 캐리어 안의 내 생리대를 쳐다봤다. 천하의 우리 아빠가 목에 생리대라니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느껴졌다.

"아빠 고생에 비하면 제가 겪은 수술은 아무것도 아니죠."

혹이 터져서 밖으로 피가 나오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아빠가 그 사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빠는 내일부터 한... 닷새는 아주 심하게 앓을 거야. 그러고 나면 좀 나아질 거야, 다시."

아빠는 애써 힘 있고 밝게 말했다. 아빠의 두려움이 그 목소리에 가려지길 시도하는 것 같다. 나는 이제야 살 것 같은데 아빠는 예정된 고통을 마주하고 있다. 살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죄송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덜 고통스럽기를 기도하는 것 밖에.


 아빠의 전화를 끊고,  나무 위의 사자가 된 기분으로  아이들의 동영상과 사진을 본다. 며칠 떨어져 있었더니 그 새 나의 아기사자들은 꽤 많이 컸구나. 손주들 보면 삶의 의욕이 생긴다는 아빠 말이 생각나 그날 밤, 사진과 동영상을 몇 개 보내주었다.  아빠의 고통은 이제 시작인지 며칠 째 카톡 확인도 못하고 있다. 아빠의 통증이 빨리 잦아들길 그리고 빨리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웃을 수 있길. 아빠가 아픈 뒤로 내 안의 원망이 사라지고 애정과 연민이 커지는 일이 애석하다. 그렇게 점점 더 애틋한 가족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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