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이었는지, 열세 살이었는지 어쨌든 그 언저리 무렵. 아빠는 종종 술이 거하게 취하면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가끔 오빠도, 언니도 받았는데 내 기억에는 내가 가장 자주 받은 것처럼 느껴진다. 오빠랑 언니의 기억에는 각자 자기가 더 자주 받았다고 얘기 할런지도 모른다. (모든 기억은 제 각기 각색되기 마련이라고, 엄마는 요즘 늘 옛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말한다.) 어떤 날은 엄마도 집에 있었는데, 엄마는 집요하리만큼 그 시간의 전화를 안 받았다.
아빠는 가끔은 또렷한 목소리로, 또 가끔은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민트야, 라면 끓여놔. 아빠 30분 뒤에 들어갈게. 파 꼭 많이 넣고 끓이라고. 어?"
아빠는 늘 파를 강조했다.그리고 문장의 끝에 꼭 다그치듯이 "어?"를 붙였다. 그 "어?"가 얼마나 무섭고 불안했는지 모른다.
가끔 전화가 새벽녘에 오면엄마는 나에게 들어가 자라 하고는, 씩씩대며 엄마가 라면을 직접 끓였다. 잠들기 전에 전화가 오면 나는 빈 부엌에서 라면을 끓였다. 라면을 끓일 때는 기분이 희한하다. 술 취한 아빠가 집에 들어오는 게 너무 싫은 동시에, 이 라면이 붇기 전에 빨리 와야 할 텐데 하고 은근히 아빠가 기다려지기도 하는 것이다.
대부분 아빠는 퉁퉁 불은 라면을 먹었고, 가끔은 전혀 손대지 않은 채 뻗어버리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 국물기 하나 없이 칼국수처럼 두꺼워진 면발을 보면 신경질이 났다. ㅡ하지만 아빠에게 왜 라면을 안 드셨냐고 물은 적은 한 번도 없다.ㅡ그보다 최악인 것은, 퉁퉁 불어 터진 라면을 먹고 나서 우리 삼 남매를 깨워 요점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었다. 그리고다음날 아침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식들 볼에 뽀뽀를 하며 밝게 웃었다. 아빠는 변화무쌍한 사나이였다.
그런 아빠가 이제는 늙고 병이 들었다. 그제야 아빠는 술도 담배도 끊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빠의 변화무쌍함은 나에게로, 내 자식에게로 대를 이어 가고있다. 내가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라면을 끓여 준 게 언제인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 자식과 아내가 끓여준 라면은 아빠에게 해장인 동시에 위안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나아가는 줄 알았던 아빠의 병이 다시 악화되었다. 아무도 반기지 않았던 아빠의 전화와 억지로 끓인 '파 넣은 라면'이 자꾸 생각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