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코끼리 Jun 17. 2016

나에게 제발 말 시키지 마세요.

유치원에서는 입이 안떨어져요

나와 쌍둥이 언니는 5살이 되자 유치원에 입학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그대로 얼어붙었다". 미리 계획 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 우리는 워낙 낯을 극심하게 가렸고 , 그 곳은 낯선이들 투성이였기에 자연스레 그리 되었다. 그리고 같은 유치원, 같은 반이었음에도  우리는 그 곳에서는 서로 이야기 하지 않았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우리는 말 안하는 쌍둥이로 인식되어졌고, 선생님들도 말하기를 억지로 강요하지 않았다.(지금 생각하면 참 감사한 일이다.) 묻는 말에만 개미목소리로 "네."하며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유치원을 벗어나면 우리는 평범한 5살 아이들로 돌아왔다. 집에서는 소꿉놀이를 하고, 껌을 종류별로 모아 실비아통에 넣어 보물단지 모시듯  했으며 , 할머니 치마폭에서 숨박꼭질을 하며 낄낄댔다.


하지만 다음날 유치원에 등원하는 순간 ,다시 또 얼음인형이 되었고, 어서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학예회 준비 기간에 무용 동작을 제대로 따라하지 않았음에도 , 우리는 (아마도 쌍둥이라는 이유로) 첫인사와 끝인사를 해야했다. 곱디고운 한복이 입혀졌고, 연지곤지 예쁘게도  찍혀졌다.

우리는 마이크 조차 소용이 없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한 줄씩 번갈아 읽었다. 마이크를 들어주던 선생님은 연신 "조금 더 크게!"라며 객석 몰래 우리를 북돋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5살 유치원 때 사진을 보면 그때의 감정이 또렷하게 생각난다. 나는 정말 옥수수가 너무 먹고 싶은데, 몸이 굳어버린다.


6살이 되어 미술학원 유치부로 옮겼을 때도 상황은 똑같았다. 유치원에서 찍은 모든 사진 속 내 표정은 참으로 한결같다. 앙 다문 입술, 힘 없는 눈빛, 무표정. 하지만 나는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제발 나한테 말 시키지 마세요."


소풍이나 운동회는 최악이었다. 김밥은 늘 혼자 먹어야 했고 , 도시락 뚜껑 여는것 조차 쉽지 않았다. 어느 타이밍에 어떻게 열어야 할지 그게 고민이었다. 무엇 보다도 가장 싫은 순간은 김밥을 먹은 뒤 아이들이 삼삼오오 짝지어 놀 때였다. 나는 김밥을 겨우 다 먹은 뒤 에도 늘 돗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보물찾기 시간이 오면 가장 반가웠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일어서 서성대는 시간이며 , 내가 그냥 서 있건, 보물을 찾건 아무도 나에게 신경쓰지 않았으니까. 보물찾기 만큼은 아니었지만 수건돌리기도 그나마 괜찮았다. 하지만 다들 나를 목표로 내 뒤에 수건을 놓는건 정말이지 싫었다. 마치 원을 이루고 있는 모든 아이들과 선생님까지도 "니가 이래도 가만히 있을수 있냐?"하고 날 비웃고 관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6살 미술학원 소풍사진. 소풍이 싫었다. 기념사진은 시키는 포즈대로 하면 되지만, 표정은 역시 무표정.

유치원 시절의 기억은 희미하다. 내가 앞서 이야기한 소풍 이야기가 유치원이었는지 , 초등학교 였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소풍은 유치원이건 초등학생 때이건 그냥 매년이 똑같았다. 시간이 흘러 우리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 대망의 7살이 다가왔다.우리는 빠른 생일로 7살에 입학을 했다. 엄마는 우리에게 몇 번이나 재차 약속을 받아냈다. 초등학교 가면 꼭 말을 하기로.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