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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Aug 07. 2016

사적인 일기

20160731

2016년 7월 마지막날의 일기.


에어컨을 끄면 덥고 , 에어컨을 켜면 옆에서 쌔근거리며 자는 아이한테 너무 센 바람이지는  않을까 싶어 다시 끄고.

열대야는 오늘도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12시 이전에 잠들기가 목표인데, 결국 오늘도 ...벌써 12시가 되어간다. 아이 재우고 나서 부터 엄마들의 또 다른 숙제는 시작되는 것 같다. 밍기적 밍기적 , 치워도 치워도 지저분한 집안 살림. 열심히  부스럭 거리며 챙기는데도, 변화는 없고  시간만 간다.


엊그제 한의원을 갔다. 근 1년간 작은 일에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 미열이 오르고, 명치에 무언가 꽉 막혀 있는 느낌 , 몸살과 가슴통증, 이명이 계속 되어 약을 지어 먹어볼까 싶었다. 수 개월 전, 내과에 갔었는데 자가면역질환이 의심된다기에 대학병원에 가라했다. 대학병원에서 총 시험관 10개 정도의 피를 뽑았는데도 딱히 원인이 없다며 다만 자가면역질환 수치하나가 경계선에 있으니 주기적 검사를 하라는 말 뿐이었다.


한의원에도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있다는건 이번에 알았다.  문장만들기 검사, 우울증 검사, 뇌파검사, 자율신경계 검사 등등 무슨 검사가 그리 많은지 검사에만 1시간을 소요했다. 차분한 여자 한의사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개인적인 일들은 크게 묻지 않고 , 육아를 얼마나 하시느냐, 일은 얼마나 하시느냐 등 객관적인 요소들만 물었다. 검사 결과를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나는 '아까 뇌파검사할 때 풀었던 도형퀴즈가 많이 틀렸으면 창피해서 어쩌지?'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나는 사실 그 퀴즈를 풀면서도 그랬다. 계속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 지금 또 틀린것 같은데,많이 틀리면 창피할텐데.아...왜이리 집중이 안되지?'

한의사선생님이 검사지를 보여주며 설명을 하는데도 내 눈은 검사지에서도 정답률 58프로,오답률 42프로라는 글씨에 머무른다. "와,저 많이 틀렸네요."

말을 내뱉고도 스스로 이 얘기 한게 더 창피한데. 라고 생각한다.

그런것 따위 중요치 않다는 듯 한의사선생님은 결과해석을 쭉 얘기한다.


1.집중력은 높은데 , 처리속도가 느린편이고, 효율이 없다. 어떤 일을 해내기 위해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뇌의 피로도가 높다.

2.교감,자율신경계 활성도 비율은 크게 나쁘지 않다. 불안도는 걱정할 수준 아니다.

3.그런데 우울증의 정도가 중증도다.자살 사고가 늘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자살생각은 없어서 다행이다.

4.전형적인 화병증세다. 화병수치가 꽤 높다.


내 직업도, 나의 육아환경도, 나의 가족도  묻지 않고, 검사 결과만을 이야기하니 나는 속으로,' 언제 내  얘기를 물을거지?오늘은 안묻나?' 생각하며 건조하고 담담하게 끄덕이며 듣고 있다가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눈물이 왈칵 나왔다.


"아마 , 주변에서는 민트코끼리님이 우울증이라고 생각안 할 거예요. 다 참고 있으니까. 참다가 참다가 짜증내는건데 , 주변에서는 왜 이렇게 별 일도 아닌데 짜증내냐고 할 거예요. 이 정도 우울증이면 종일 짜증이 날 거예요."


왜 별것도 아닌데 왜 꼭 그렇게 짜증내며 얘기하냐는 남편의 쓴소리와 함께, 겉으로는 눈썹을 찡그리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이까짓걸로 왜 이렇게 화를 냈을까 하는 머쓱한 나의 감정이 동시에 떠올랐다.


한의원에 들어가기 전의 상황도 그랬다. 식당에서 콩은 아빠에게 물컵을 달라 떼 썼고,  남편은 내가 무어라 얘기할 틈도 주지않고 , 물이 한가득 들어있는 컵을 건네주었다. 결과는 당연했다.

"애 데리고 한두번 나와? 당연히 다 쏟는 거 아니야?조금만 따라 줘야지 .물이 가득한 컵을 주면 어떡해?"

남편은 당황한 동시에 화를 참고 있었다.

난 아이를 일으키며 테이블에 몇 장없는 휴지를 의자에 갖다대었다. 이어서 간주 없는 2절을 시작했다.

"왜 가만히 있어? 닦을거 달라고 해야될 거 아냐!"

물먹은 휴지는 별 역할을 못하고 힘 없이 의자에 달라붙어 있다. 의자 위의 물이 여전히 흥건하다. 홍수가 난 테이블에서는 바닥으로 폭포를 내려보낸다. 이 많은 양의 물이 저 컵 안에 들어갔다는 것도 신기할 정도로.


한의사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까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남편과 나 둘 다에게 유감을 느꼈다. 그 날 부터 한약치료, 침치료를 시작하였고, 다음주부터 심리상담치료도 하기로 했다.


심리상담소를 찾아간 적은 4년 전 마음이 너무 힘들 때 딱 한 번 있었다. 쌓아 온 마음을 잘 풀어냈다. 과제를 내주었고, 다음 약속을 잡고 가라했는데, 나는 약속을 잡지 않았다. 상담자는 나의 직업과 관련된  자신의 궁금점을 물었고 , 상담받으러 오는 분들 중 의외로 나와 같은 직업이 많다고 하였다.  그 방을 나올 때 왜인지  창피하고 수치심이 느껴졌다. 그래도 긍정적인 효과는 있었다. 나 자신에 대해 그 사람보다는 나 스스로가 더  잘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 그렇게,  제법 잘 지내왔다.


이 곳에서의 치료가 어떻게 진행될지 사뭇 궁금하다. 그리고 이제는 눈치보는 삶 말고 , 좀 더 나를 위해 살자고 다짐 해본다. 애쓰지말자.


브런치는 작가마다(나 자신을 작가라 칭하기는 어색하고 부끄럽지만)모두 다른 의미가 있는 매체인 것 같다. 내 글을 일부러 찾아 읽는 사람도 얼마 없을 것이고, 문득 문득 그냥 계정을 없앨까 싶다가도.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나도 모르게 클릭하고야 마는...

오늘은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다가 작가들간의 끈끈한 관계와 애착을 엿보고는 조금 애석해졌다. 질투일지도 모르겠다.


역시, 너무 애쓰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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