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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Oct 18. 2016

남해 독일마을에서 받은 위로

독일식족발 그리고 독일식돈까스

남편과 단둘이 주말에 남해에 다녀왔다. 남편은 늘 토요일에도 일이 있어  피곤에 젖어 있었고, 나는 세살짜리 아들이 해열제로도 해결안되는 고열을 겪은 직후라 몸살에  시달렸다. 아기가 아픈것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여행을 감행하는 이기적인 엄마가 된 것같아 하나도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아프다고 비실대고 찡그리는 엄마보다, 하루라도 웃음으로 맞이할 수있는 할머니가 아이에게는 더 좋은 영향을 미칠 것만 같다는, 역시 자기합리화의 변명을 만들어 놓고 떠났다.


남해 여행 1박2일을 계획할 때 숙소를 고민하지 않고, 독일마을로 정했다. 일종의 나의 로망이었다.


오후 늦게 도착한 우리는 근처에 눈여겨보았던 <버디베어>에서 슈바인학센을 먹기로했다. 3만원짜리 독일식 족발은 내가 미리 인터넷에서 보았던 것 그대로였다. 굉장히 투박했다. 이 투박한 음식이 정녕 그토록 맛있단 말인가?

슈바인학센을 한 입 베어문 우리는 눈이 동그래졌다. 바삭하고, 쫄깃하고, 담백했다. 독일생맥주를 한모금씩 마시니 몸살기가 눈 녹듯이 사라진다. 너무 지쳐있던 현실에 벗어나 이 곳에 있으니 비현실적인 지금의 분위기에 취한다.

"인간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서로가 공감을 못해주기 때문인 것 같아. 부모와 자식간도, 부부사이도, 친구간에도. 힘들다는 얘기에 '내가 더 힘들어.', '더 힘든 사람도 많아.'라는 식으로 대꾸하면 그건 상처를 주는 일이야. 나도 그런것 때문에 상처받으면서도, 남들에게 그렇게 하고 있더라니까."

끄덕거리며 듣고있는 그를 향해 술에 취한 사람처럼 맘 속 이야기를 잠시 늘어놓는다.

양이 많지는 않으나, 야외에 자리잡았더니 마지막 한조각은 식어버려 아쉬웠다. 그럼에도 남편은 그 마지막 조각까지도  와...캬...등의 감탄사를 연발하며 흐뭇한 표정으로 식사를 마무리 했다.


다음 날은 비가 왔다.

우리는 독일마을가는 길에 우연히 보았던 <당케 슈니첼>이라는 식당에 가보기로 했다. 검색해보니 꽤 유명한 맛집이란다. 독일마을에서 차로 약 10분 정도 떨어진 곳이다. 비가 오는데도 세 팀정도 대기표에 이름을 쓴 뒤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건물앞에 도착하자 서빙을 담당하시는 사장님이 미닫이문을 슬며시 열더니, 자리가 협소해서 30분이상 기다려야 하는데 괜찮겠냐며 기다림의 시간을 미안해한다. 대기명단에 이름을 쓴 뒤, 귀여운 빨간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으니 운치 있고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순서가 되어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니, 사장님이 다시 웃으며 메뉴판을 건넨다. 메뉴판도 맘에 든다. 가죽커버에 그라데이션으로 염색을 한 듯하다.


우리는 30,000원 짜리 2인세트를 시켰다. 돼지고기 슈니첼 2개와 굴라쉬. 사이드 선택은 남편은 빵, 나는 밥.

자그마한 부엌에는 사장님의 아내로 추정되는 분이 혼자서 쉴틈없이 바쁘게 움직이신다.


드디어, 음식이 나오자 사장님이 말씀하신다.

"드시는 방법 설명드릴게요. 슈니첼은 레몬을 뿌려드시고, 그냥 드셔도 좋고, 굴라쉬에 찍어먹어도 좋습니다. 굴라쉬는 숟가락으로 한번 저어서 드세요. 빵을 찍어먹어도 맛있고, 굴라쉬 자체만 먹어도 좋아요."

오늘만 해도 수없이 반복했을 그 말을, 기계적으로 할 법 한데도, 참 정성스럽게 얘기해준다.


슈니첼은 보기에도 정말 먹음직스러웠고,  우리나라나 일본 돈까스와는 확연히 다른 맛이 느껴졌다. 입에 넣는 순간 향신료의 냄새가 퍼지면서 얇은 고기가 딱 좋은 식감으로 씹힌다. 굴라쉬에 찍어먹는 맛도 일품이었다. 얇아서 배가 안부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먹다보니 양이 상당하다. 여자분 넷이 온 팀이 네 개를 시키니 사장님은 세 개도 충분하다 설명한다. 참 착한 마인드로 자부심을 갖고 꾸려나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계산을 하러 가자

"음식은 입맛에 맞으셨나 모르겠네요."

웃으며 묻는다.

"네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 친절하셔서 ...기분도 좋고..."

라며 쑥스럽게 끝말을 흐렸더니

"하하,그랬습니까? 돈을 주시는 분들이니까요.하하. 돈주시는 분들에게는 친절해야죠. 와이프한테는 이러지않습니다."

라며 밝게 인사해주신다.


이번 남해여행이 나에게 준 것은 "위로"가 섞인 음식들 이었다.



*2017년 2월중순 당케슈니첼을 다시 찾아갔는데 카페가 생겨있더군요.사장님께 전화해보니 독일마을 내로 이사 준비 중이라네요. 3월 중 오픈한답니다.


*2017년 10월 남해를 다시 갔습니다. 버디베어의 슈바인학센은 고기가 조금 질겨졌더군요. 처음의 감동이 전혀 없었습니다. 당케슈니첼은 독일마을 입구로 이사갔고, 여전히 음식나오는 시간이 좀 길긴했지만 역시 정성이 느껴지는 맛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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