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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Jul 14. 2016

그게 뭐가 문제야?

어쨌든 잘 자랐잖아...?

나의 현재 고민 ㅡ콩이 나처럼 선택적 함구증을 가진 아이로 자라면 어쩌지ㅡ을 들은 나의 지인들과 친구들은 하나같이 똑같이 반응한다. "근데 그게 뭐가 그렇게 문제야? 어쨌든 잘 자랐잖아."

그 말을 들으면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다. '맙소사.그게 왜 문제냐고? 커서 어떻게 됐느냐가 중요한게 아니잖아. 그 작은 아이가 받았을 고통이 중요한거지! 평범하지 않은, 친구도 하나 없는, 괴롭힘을 당하는 어린시절이 지나가면 그만인 것  같니? 그게 너나 너의 아이라도 그런 소리가 나올까?'

속으로는 할 말이 많지만 , 겉으로는 어색하게 대충 웃어 넘기는 척 하는 나.


 시댁식구들도 나의 고민에 도리어 묻는다. "콩이 심하긴 하더라. 그렇게 밖에서 말 안한다고 큰 문제가 되니?너도 지금은 안그러잖니. 걱정하지마라." 다들 선택적함구증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럴 수 있다. 나의 어린시절이 어땠나 묻길래 이야기를 하자니 끝이 없다. 나는 식구들에게조차, 별 일 아닌데 고민하는 예민한 엄마 취급을 받고 있는것 같은 기분에 하염없이 외로워진다.


친정엄마는 지금의 나와 반대로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내내 우리자매가 말을 안한다는 사실을 아주 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혹시 내 아이들이 자폐아 인가? 자폐아는 아니구나. 성적도 상위권이고, 선생님들도 아이들을 문제아 취급 하지 않으니 괜찮겠지 .

그렇게 넘어갔던 모양이다.


허나, 나는 지금도 엄마에게 풀리지 않는 화가 있다. 마치 그것은 , 별로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식도와 위장 사이에 "탁" 걸린듯한 고기덩어리처럼 짜증이 엉겨붙은 응어리이다. 초등학생 4학년 정도 되었을 때, 우리자매는 엄마에게 전학을 보내주면 안되냐고 사정했다. 엄마는 매번 그 말을 웃어넘겼다.

"전학가면 말 잘한다고?에이구~ 하하."

엄마의 웃음 저 너머에 '행.여.나~'라는 단어가 옅게 메아리 치는 것 같았다.


지금에 와서 그 이야기를 슬며시 꺼내면 엄마는 말한다.

"나는 너네를 믿은 죄 밖에 없어. 이것봐. 훌륭하게 잘 컸잖아."

그 말은 30대중반이 된 나의 생채기를 다시 후벼팠다.


만약 선택적함구증을 가진 아이의 부모가 이 글을 본다면 이야기 해주고 싶다. 당신의 자녀가 , 어느 정도 대화가 잘 통하는 고학년이 되었고," 전학보내주면 말 잘할게!"라고 큰 소리를 친다면 한 번만 아이를 믿어주시기를. 전학이 만능 해결책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 정도 큰소리 친다는 것은 남들 앞에서 입을 열 용기와 의지가 있는 것이고, 평범하게 지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라고. 

다만 지금 갑자기 입을 열기에는  나를 '말도 못하는 한심한 아이' 취급 하는 주변인들이  많아, 그 익숙한 환경이 아이의 입과 용기를 틀어 막고 있을 뿐이라고.

제주 에코랜드는 아이들 데려가기 참 좋은 곳이다.  모르는 아이들도 친구가 되어 잔디밭에서  함께 뛰어논다. 우리 콩은 혼자가 더 편한 아이지만 자연속에서 참 잘 뛰어놀다가 왔다.


(추신.이제 와 생각해보니, 선택적 함구증은 보통 환경에 예민하고 낯가림이 심한 아이에게 생길 것 같은데 ,  오히려 좀 큰 아이들에게는 나를 모르는 이들만 있는 낯선 장소가 차라리 입을 뗄 용기를 준다는... 아이러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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