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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Jul 11. 2016

얼음!땡!

선택적 함구증의 극복 시작

5학년이 되었을 때, 얼음 땡이 마치 우리반의 유행처럼 번졌다. 몇몇 아이들은 방과 후 남아 운동장에서 격렬하게 땀을 흘려가며 얼음땡을 하기도 했다. 말도 하기 힘들고, 얼음땡을 할 정도로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것은 꿈꿀 수 없었으니 어차피 나와는 먼 이야기 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 아이가 "너도 학교 끝나고  얼음땡 같이 하자!"며 너무나 자연스럽게 얼음땡의 세계로 날 초대했다. 싫다 하기에는 거절의 핑계가 없었고, 핑계가 있다하여도 말을 못했으리라.


얼음땡에 참여하기로 한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자 , 어떤 아파트 단지 안의 놀이터로 갔다. 그 아이들의 무리에 끼어 걷다보니 , 마치 원래 내가 이들과 친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술래를 정하고 , 얼음땡이 시작되었다. 술래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너무 급박한 상황. 내 입에서는 "얼음!" 소리가 나왔다. 아마 얼음 소리는 기어들어 갔을텐데, 그저 나는 그대로 멈추는 얼음 동작만큼은 그 누구보다 아주 잘 했을 것이다. 멈춰야 되는 타이밍에 멈추는 것은 , 선택적 함구증 아이들에게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일보다는 아주 쉬운 일이다.  처음으로 '얼음'이라고 내뱉는 나의 목소리를 들은 술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목표물을 찾아 떠났고, 우리편의 다른 아이가 와서 내  어깨를 툭 치며 "땡!!!"을 외쳤다. 나는 그 순간 , 자유로워진 몸으로 더 힘차게 도망다녔다. 땡이라는 한 글자에 마치 마법의 힘이 있는 것 같았다.


내 입에서 말이 나오면, 몇 년동안 말 못하는 아이로 치부됐던 나를 보고  아이들이 어리둥절 해 할거라 예상했는데.늘 그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었는데... 지금 아이들은 날보고 비웃거나 황당해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선택적함구증 아이들이 그것을 극복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점이 아닐까 싶다. 주변인들이 아이의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 누군가 그의 목소리에 , "엇, 얘 갑자기 말은 하네? 또 해봐." 하는 행동은 아이를 더 미궁 속으로 빠뜨리게 하는 일이다.


 학교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간혹 선생님들은 발표가 나의 입을 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했던 모양이다. 선생님들은 나를 콕 짚어 수 없이 많은 발표를 시켰다. 꿀 먹은 제자는 맘속으로만 외칠 뿐.  오...선생님, 제발 착각하지 마세요.  

교실의 모든 아이들이 집중 하는 상황에서 억지로 혹은 의무적으로 입을 여는 것은 썩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차라리 선생님과 아이가 조금이라도 말을 하는 상황이라면, 선생님과 아이가 일상적인 이야기 하다가 다른 아이를 한명씩 투입시키는 편이 좋을 것이다. 선생님과도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면, 선생님과 종이에 글로 대화를 나누어 관계를 가깝게 만드는게 중요한 일인 것 같다.


나는 심리 치료사도 아니고, 이공계열 출신의 평범한 워킹맘이므로 누구에게 조언 할 수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아, 방향이 샜다.

다시 나의 얼음땡 시절로.


나와 아이들은 그렇게 한참 동안 얼음땡을 하다가, 날이 어둑해졌다. 누군가 이제 집에 가자는 말이 나왔을 때 나는 조금 머쓱해져 버렸다. 방과 후에 학급 친구들과 놀아본 것도 처음이었고, 이렇게 늦은 시간 집에 들어가기도 처음이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대충 하고 ,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급해졌다. 할머니랑 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텐데 ,얼른 가서 언니에게 말해줘야지. 입을 열어도 생각보다 아이들이 날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나는 얼음땡을 했던 아이들과는 학교교실에서도 조금씩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5학년이 끝나가고 6학년이 되기 전. 나는 처음으로 개학식이 두근두근 설레었다. 이제 나도 조금은 평범한 6학년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놀이터에 아무도 없을 때만 천방지축이 되어버리는 콩.선택적 함구증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콩에게도 나처럼 얼음 땡의 순간이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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