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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Jun 16. 2017

소리

슬도 그리고 국화빵

세 가족이 계획없이 떠나는 주말 나들이가 익숙해졌다. 한 지인이 '슬도가 좋다더라.' 하는 얘기를 듣고, 즉흥적으로 울산 슬도에 다녀왔다.


날씨가 맑고, 낚시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바람이 어찌나 심하게 불던지, 한 번은 내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는 아빠 몸에 코알라처럼 꼭 달라붙어 있었다. 안겨있지 않았다면, 그 작은 몸으로는 걷다가 날아가듯 넘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 곳은 바람이 바위의 틈을 지날 때 거문고소리가 난다던데, 사실 거문고건 가야금이건 나는 상관이 없었다. 내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것 같은 바람이 그저 귀찮고 피곤했다.


이상하게도 나들이 가는 길은 즐거운데, 막상 도착해서는 기분에 거슬리는 일들이 많다. 시도 때도 없이 안으라는 아이의 요구도 짜증스러웠고, 큰 길로 가고싶은데 하필이면 낚시대가 촘촘하게 세워진 길을 택한 남편에게도 화가 났다.  청개구리 아들은 걷자 하면 안아달라하고, 쭉 안겨있다가도 하필이면 낚시대가 빼곡한 그 곳에서 온 힘을 다해 내려놓으라고 발버둥친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갑자기 신이 난 아이는 낚시대 사이 사이 후다닥 뛰며 소리를 지른다. 등에서 땀이 난다. "콩아,쉿!소리 지르면 물고기들 도망가." 아랑곳 하지않고 청개구리는 이리 폴짝,저리 폴짝.


대충 한바퀴 쓱 둘러본 뒤, 햇빛과 바람에 지친 나는 근처의 '소리박물관'에 들어가자 했다. 소리박물관이 궁금한건 아니었고, 단지 실내에서 바람을 피할 요량이었다.


가는 길목에 국화빵 파는 트럭을 보았다. 어린 시절 추억도 생각나고 먹고 싶었지만 바람에 지친 나는 일단 실내로 들어가는게 급했다.


소리박물관은  시각적,청각적 자료들로 자연의 소리, 인공적인 소리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3D영화관을 포함하여 50분 남짓 둘러보았다.


 나오는 길에 조금 여유가 생긴 나는 벼르고 있던 국화빵을 사러 갔다.

국화빵 트럭에는 부부로 보이는 두 분이 열심히 국화빵과 공갈호떡을 만들고 계셨다. 가까이 가보니 붙여놓은 흰 종이가 눈에 띈다. 들리지 않으니 입 모양을 크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리박물관 앞에는 소리를 못듣는 분들이 국화빵을 팔고 계셨다. 입모양을 크게, 손가락을 하나 펴들고 말했다.


호떡 .하나요.


아저씨는 재차 확인한다. 호떡을 가리키며 입모양으로 호떡?


네. 국화빵. 한 봉지도요.

감사합니다.


나의 인사가 전해졌는지는 모르겠다. 그 분들은 우리에게 국화빵을 건네주고는, 뒤에 계신 다른 두 분과 수화로 빠르게 대화를 주고 받았다.


국화빵을 한 입 베어무니, 뜨거운 팥앙금이 찌익. 입천장을 데였다. 나는 왠지 숙연해졌다.


바람소리도, 아이가 안으라는 소리도, 아이가 신나서 지르는 소리도 종일 다 짜증스럽게 느끼고 있었는데. 부끄럽고 후회가 됐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세상은 어떤 곳인지 감히 상상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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