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코끼리 Jul 25. 2017

아빠 생각

@pen ee-3, Austria

아이의 쌔근대는 숨소리를 들으며, 스마트폰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 아이가 깰까봐 반사적으로 수신거절을 했다. 전화가 끊기고 나서야 보이는 발신자. 아빠.


거실로 나가 아빠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ㅡJ서방은 왜 전화를 안받냐?

ㅡ아, 그 사람은 회식중이예요. 아빠. 저는 콩이 봐줄 사람이 없어서 회식 못 갔어요.

ㅡ오늘 서울이 35.4도였어. 아까 서울에 볼 일 있어서 잠깐 갔다왔는데 잠깐 밖에 나가도 막 피부가 타들어가. 이 더운 여름에 왜 하필 세부야. 알래스카 같은 데를 가야지. 필리핀 거기 총 쏘고 위험해.

ㅡ저희 휴가를 3일밖에 못써서 멀리 가고싶어도 못가요. 그냥 리조트 안에서 쉬다가 오려고요. 수영장도 있으니까 콩이도 수영시키고. 리조트 안은 안전하대요.

ㅡ그래? 괜히 쇼핑다니지 말고, 관광지 이런데 가지 말고. 그냥 리조트 안에서 쉬고 와.

ㅡ네.

ㅡ그래... 여름에는 추운데 가고, 겨울에는 더운데 가는거야. 원래.

ㅡ네. 추운데 가고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ㅡ그래.끊어.

ㅡ네.아빠.


어제만해도 이번 휴가때 세부에 간다는 문자에 ,다른거 필요없고, 필리핀 전통무늬 셔츠 하나랑 반바지 하나만 사다주면 된다고 했던 아빠다. 면세점에서 셔츠도 아니고 시장에 파는 필리핀 셔츠라니. 너무나도 아빠다운 발상에 엄마와 언니의 카톡창에 문자를 캡쳐해 보여주고 다같이 웃었다. 하루 지나고 나니 문득 걱정이 되어 잠이 안오는 모양이다.


아빠는 어릴 때, 우리가 자고있으면 술냄새를 풍기면서 들어와 수염으로 따가운 얼굴을 비벼댔다. 참 거슬렸다. 너무 졸린데, 왜 이렇게 쪽쪽대고 비비는거지.  


아빠는 솔직히 이중적이었다.


기분이 안좋을때는 아빠는 종종 엄하게 얘기했다. 자세를 똑바로 해라, 등 펴라, 말 할때 또박또박 큰 소리로 해라, 책을 크게 읽으며 연습해라.등...우리가 어느 정도 머리가 커진 때부터는 술을 드신 날은 자고있는 우리 삼남매를 깨워서는 아빠의 한을 이야기한다. 아니, 이야기 했다는 표현보다는 주사를 부리신다. 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다.


기분이 좋을 때는 쪽쪽 뽀뽀하고, 등에 올라타라며 말을 태웠다. 기억을 거슬러올라가보면 , 아빠의 등위에서 우리는 썩 웃지 않았다. 우리는 아빠랑 있을 때 불편했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아빠앞에서 웃는게 자연스러워졌다. 내가 아이를 낳고나서 보니, 나는 아빠라는 존재가 불안했던 것 같다. 아빠는 일관적이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아빠가 자식들 앞에서 갖은 애교를 피워도 자연스럽게 웃지 못했다.


아빠가 왜 그리 자는 아이들을 귀찮게 했는지 이해가 간다. 나는 유독 일하고 들어온 날은 잘 자고있는 콩이 얼굴에 내볼을 문지른다. 쪽쪽댄다. 가끔 말도 시킨다.

ㅡ엄마 왔지.사랑해. 콩이도 엄마 사랑해?

아이는 가끔은 귀찮다는듯 고개를 돌리고, 가끔은 미소짓는다. 아주 가끔은 대답도 한다.

ㅡ응...

정말 자는 아이의 모습은 가만 못둘 정도로 너무 너무  예쁘다. 아이의 잠이 깨버리면 방정맞았던 내 자신을 탓하지만.


그리고 그 때 아빠의 잔소리도 이제 이해가 간다. 등 펴라, 책읽는 연습해라. 아빠는 사람들 앞에서 말 안하는 쌍둥이가 답답했던거다. 늘 자신없고, 주눅들어 있고, 의사소통을 원할히 못하는 그 모습이 속상했던 것이다. 그 때의 나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했다. 평소에 나한테 관심도 없으면서 맨날 똑같은 잔소리, 듣기 싫어. 아빠 딴에는 우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되, 돕고 싶었던 거였을텐데...


지금 내 모습은 아빠를 참 닮아있다.  아마 내 아이가 가진 불안과 기분파 기질은 아빠에게서 나로, 나에게서 내 아들로. 그렇게 전해지는 것 같다. 콩에게 호수같이 잔잔한 아빠가 있는 것은 참  다행인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