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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Nov 20. 2017

재인의 휴가

빵ㅡ!

클랙슨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이내 그 성난 차가 쏜살 같이 옆으로 오더니 창문이 열린다. 중년의 신사가 대뜸 소리 지른다.

 "마!!!! 니 운전 똑바로 안하나? 운전 못하면 차 끌고 나오지 마라고!"

심장이 고장 난 듯 쿵쾅댄다. 창문을 반만 열고 머리를 조아린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중년의 신사는 재인을 한번 째려보더니 휑 하니 앞으로 나가면서 말을 뱉는다.

"그지 같은 년."


재인은 창문을 올린다. 유리창이 올라갈수록 눈에는 눈물이 차오른다. 금세 눈물은 넘쳐버린다.

"젠장... 깜빡이 켰고 안전거리 충분했는데, 지가 속도를 안 줄여놓고 왜 나한테 지랄이야.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죄송하다고 했지?" 

별 일도 아닌데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와 시야를 가린다. 음악을 틀었다.


아무래도 이름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재인이라는 이름은 맞지 않는 것 같아. 초등학교 때부터 반 친구들은 그녀를 죄인이라고 불렀다. 재인은 자신이 늘 죄인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 이름 때문인 것만 같았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바보처럼 머리를 숙였을까?'

노래를 흥얼거려본다. 기분이 좀 낫다.


안 그래도 치과치료를 받고 기분이 우울해진 터였다. 신경치료받는 이가 건드려질 때마다 시큰한 통증이 있어, 치과의사에게 이야기했다.

"어떻게 건드려질 때 말인가요?"

"예를 들어, 칫솔질을 할 때도 그렇고... 혀로 조금 밀어도 그렇고... 손가락으로 약간 쳐도 그렇고."

의사는 대뜸 한심하다는 투로 그러나 환자들에게 골백번은 말한 듯 형식적으로 말한다.

"건드리지 좀 말고 가만 두세요. 자꾸 건드리면 뿌리 끝에 염증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죠? 가만히 놔둬도 모자란데, 그렇게 건드리면 발치 가능성만 높아집니다."

재인은 순간 부끄러웠다. 아니, 수치심이 느껴졌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중얼거린다.

"아... 네. 그럼 안되는데 자꾸 신경이 쓰여서... 죄송합니다."

진료의자가 넘어가고 신경치료는 다시 진행된다. 징징징. 이 기구는 겪을 때마다 마치 드릴같이 느껴져 무섭다.

' 그나저나 난 또 죄송하다니. 내가 뭘 잘못했나? 이를 빼도 내 이지, 이 의사 이도 아닌데... 나는 왜 아무 때나 죄송하다는 말이 나오지. '


오랜만에 휴가를 내고 쉬는 날인데 기분 좋지 않은 일들만 연속으로 일어나고 있다. 재인은 요즘 즐겨가는 허름하고 작은 커피숍에서 라떼 한잔을 홀짝거리며 sns에 접속한다. 회사동기의 sns에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꽤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정갈한 음식을 먹고 있는 그녀의 웃음이 화사하다. 갑자기 앞에 놓인 싸구려 커피잔이 초라하다. 이 소중한 하루,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이름을 바꾸러 작명소에 갈까? 그동안 미뤄왔던 일 중 하나였다. 재인. 참 예쁜 이름인데. 영어 이름도 똑같이 Jane으로 쓸 수 있으니 좋고. 재인. 재인. 죄인... 역시 내일도 죄인같이 비굴한 하루가 될까 봐 두렵다.


라떼 한잔을 다 마신 뒤, 벌떡 일어난 재인은 운전대를 잡았다. 그만 미루고, 실행에 옮기자. 지인이 소개해 준 작명소가 있다. 주차를 하고 재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크게 한숨을 내어쉰 뒤, 무겁게 발을 뗀다.


작명소 옆 신경정신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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