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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Dec 07. 2017

우리아이의 태아기억

임신때부터 상당히 관심을 가졌던 태아기억에 대해 실현해 볼 시기가 왔다. '읽을수록 놀라운 태아기억 이야기'는 임신기간 중 읽었던 몇 권 안 되는 책 중에 하나였다. 제목대로 읽을수록 놀라웠다.


 때가 됐다. 이제 39개월이 된 콩이는 원하는 문장을 마음껏 만들수 있으며, 아직 임신이나 태아에 관한 배경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초반 몇 번은 아이가 딴청을 피우길래 잊은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날, 내가 자궁근종 검진을 위하여 병원을 다녀온 날 의도치 않게 콩이로부터 태아때의 이야기가 나왔다.


ㅡ엄마, 병원 왜 갔어?

ㅡ응. 엄마 배 속에 혹이 있거든. 그 혹이 커졌는지 보고왔어.

ㅡ혹?

ㅡ응. 콩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있던 방. 거기에 혹이 있는데 커졌대. 그래서 혹을 떼야 되는지 의사선생님한테 물어 보려고 갔다 왔어. 콩이는 엄마 배 안에서 둥근 혹 못봤어?

ㅡ둥근 거?둥근 거 있었어. 뱀도 있었어. 뱀.

ㅡ뱀이 있었다고?

ㅡ응. 뱀 같은거 있었어.

ㅡ뱀이 어디에 붙어 있었어?

ㅡ내 배.

ㅡ진짜? 배에 붙어 있었구나. 세상에. 또 배 속이 어땠어?


 흥분된 마음을 숨긴 채 조금 더 캐내고 싶었으나, 아이는 갑자기 딴청 피우고 노래하고 못들은 척 했다. 분명 아직 우리 아이는 태아 그림 같은 것을 본 적이 없을 텐데, 더군다나 봤어도 탯줄까지 캐치하지는 못했을텐데 정말 기억을 하는 것일까?


그 날 저녁, 씻기기 위해 옷을 벗기면서 다시 뱀 얘기를 슬쩍 꺼내보았다.

ㅡ콩아, 그런데 뱀 같은거 콩이 배 어디에 붙어 있었어?

 조금도 망설임 없이

ㅡ여기!

 라며 배꼽을 가리킨다.

ㅡ어머...거기 붙어있었어? 그거 갖고 놀았어?

 콩은 자기 배꼽을 들여다보더니 하는 말이 가히 충격적이다.

ㅡ응. 그거 잡아당기고 놀았어. 세게 잡아당겨도 안빠져.

ㅡ진짜?안 빠져? 그거 뺐다 꼈다하는거 아니야?

ㅡ아니야. 안 빠져.

ㅡ그리고 또 뭐하고 놀았어?

ㅡ책 읽고 놀았어.


 그럼 그렇지. 말을 지어내는구나 싶어서 피식 웃었다.

ㅡ피.... 콩아. 뱃속에 책이 어딨냐? 크크크크.

ㅡ책 넘기는 소리 났어. 엄마가 읽었어.

ㅡ응?책을 엄마가 읽었어?콩이도 책을 같이 봤어?

ㅡ아니. 엄마가 읽어 줬어. 들었어.


 나는 만삭때 까지 일을 하느라 심적 여유가 없어서 태교하는 것은 해본적이 없는데, 그나마 일주일에 한 두번씩 태교동화를 소리내서 읽은 적이 있다. 진짜 이 녀석은 그걸 얘기하는 것일까? 나는 콩이가 태아기억을 갖고 있음을 확신하고 그 다음 날도 은근슬쩍 조금씩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내가 지독하게 입덧했을 때 아이도 느꼈을까?


ㅡ콩아, 콩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말야,엄마가 토도 했어?

ㅡ응. 토했어. 많이 했어.

ㅡ엄마가 토하면 콩이는 기분이 어땠어?

ㅡ슬펐어. 훔~(슬픈 표정)

ㅡ그럼 엄마가 뭐 할때 기분이 좋았어?

ㅡ매운거 먹을 때.


 태아가 내가 매운 음식 먹는것을 느낄수 있을까?우연치고는 너무 맞는 이야기들만 해서 반박 불가다.


ㅡ엄마가 콩이 뱃속에 있을 때 무슨 음악 많이 들었어? 즐거운 음악?

ㅡ아니.슬픈 음악.


 임신 때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은 랄라스윗의 '오월'이었다. 그 잔잔한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감정이 북받쳐 울기도 여러번.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나는 한 두가지씩 질문을 했고 어떤 날은 내 질문을 무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대답을 해주었다.

ㅡ 콩아 근데 뱃속에는 물이 있어?없어?

ㅡ있어.

ㅡ거기는 수영도 할수있어?

ㅡ응.

ㅡ수영도 하면 넓겠네?

ㅡ아니야.좁아.

ㅡ물을 먹었어?

ㅡ응.물 먹고. 웩 하고 토도 나왔어.


 최근 콩이가 해 준 이야기들은 나에게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내 주변의 네 살아이의 엄마들에게 한 번 물어보라고 권유하고 다닌다. 그런데 대부분의 엄마들은 이런 반응이다.

"진짜 그걸 기억할까? 에이..."

"우리 애는 물어봐도 기억 안난다더라."

"야. 우리애는 기억못하나봐. 뱃속에서 고래밥을 먹었다는데?ㅋㅋ"


이케가와 아키라의 글에 따르면 아이들은 이 기억을 입 밖으로 꺼내기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기억을 못 하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어떤 아이들은 말을 하기 싫어서 비밀로 간직하는 것이 아닐까.


 배 속 시절을 기억하건 말건, 결국은 나이를 먹으며 모두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입에서 나온 값진 말들은 내 마음에 길이 남을 것 같다. 그래서 잊고 싶지 않아 이 글을 쓴다.


내 몸 속에 있던  핏덩이가 이 모든걸 듣고 느끼고 기억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신비롭고 동시에 매우 짠하다. 일하다가도 몇 번씩 변기를 붙잡고 꽥꽥 거리고, 남편에게는 작은 일에도 서운하고, 눈물이 많았던 그 때. 조산기로 입원했을 때도 약 부작용으로 아프고 힘들어, 내 뱃속 아기가 번거롭다고 느꼈다.   오롯이 그것을 함께 겪고 느꼈을 작은 생명.

난 아마 둘째를 갖는다면, 그 때와 조금은 다른 마음가짐과 태도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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