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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Dec 07. 2017

장원장의 일상

 장원장은 오늘도 알람보다 먼저 눈을 떴다. 핸드폰에 손을 뻗어 알람을 끈다. 알람소리를 들으며 깨는 일은 썩 유쾌하지가 않다. 알람벨의 종류를 바꿔도 소용이 없었다.


 '아.......출근 하기 싫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다가 이내 벌떡 일어난다. 방문을 열고 나오니 아내는 아이의 이유식을 준비하고 있다. 새벽녘 아이의 울음소리와 아내의 목소리가 잠결에 들렸었다. 역시 간밤에도 통잠을 못잤나보다. 빵과 선식을 먹고 나니 아이가 깼다.


  치과에 출근하자마자 환자가 와있다. 늘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여자 환자다. 신경치료 하고 있는 치아의 증상이 안 없어진다며 불안에 떤다. 어떻게 건드려질 때 아픈지 물었다.


"예를 들어,칫솔질을 할 때도 그렇고...혀로 조금 밀어도 그렇고...손가락으로 약간 쳐도 그렇고."

장원장은 한숨을 겨우 참으며 이야기한다.

"건드리지 좀 말고 가만 두세요. 자꾸 건드리면 뿌리 끝에 염증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지난번에도 이야기 했죠?가만히 놔둬도 모자란데, 그렇게 건드리면 발치 가능성만 높아집니다."

여자환자는 금세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네.그럼 안되는데...자꾸 신경이 쓰여서.죄송합니다."


장원장은 치료를 하며 생각한다.

'이 여자분은 왜 자꾸 나만 보면 죄송하다고 하지?내가 너무 강하게 이야기했나?'


 그래도 그렇지......치과생활 십년이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최선을 다 해 치료해 놓은 보람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면 여전히 억울한 감정이 올라온다. 애써 치료 해놓은 치아가 환자의 부주의로 다시 악화될 때, 발치를 하자고 하면 돌팔이의사 취급을 받기 다반사. ㅡ이쪽으로 씹지마세요. 손가락으로 자꾸 건드리지마세요. 임플란트 심은 뒤 담배는 절대 안됩니다. 설명하고 또 해도, 환자들은 결론이 중요하다. 하기야, 장원장 본인이 환자라고 해도 결론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어제도 한 노인분이 역정을 내고 가셨다.                                     

 "결국 발치라고? 그럼 처음부터 발치하지 무슨 생고생을 이렇게 시켜?나와!나 다른 치과갈거야!"  그럼 장원장은 속으로 후회를 한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냥 뽑을 것을, 자연치 될수 있음 살려보자고 내가  왜 그랬을까요.' 잊을만하면 겪게 되는 이런 일들이 우리들의 운명이니 받아들이고 겸허해지자. 그  와중에 장원장에게 신뢰를 갖고 있는 많은 팬들이 있어 그래도 버틸수 있다.


 다음 환자는  첫 내원하는 환자인데, 장원장을 보자마자 긴장이 섞인 함박웃음을 짓는다. "안아프게 치료 잘해주신다고 소문 듣고 왔어요."

"아이고. 누가 그렇게 좋은 소문을 내주셨답니까?하하."

"나 다니는 목욕탕 아줌마들이 죄다 여기 얘기를 그렇게 합디다. 잘해주이소."


 요즘 목디스크가 악화되고 있다. 오늘은 평소보다 15분 일찍 문을 닫았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약국에 들렀다. 피로, 권태감, 몸살이 계속 되니 삶이 외로워진다. 약사는 꽤 비싼 영양제를 추천해준다. 영양제는 사본 적이 없어서 선뜻 사지지가 않는다. 갑자기 육아와 가사노동으로 늘 다크서클이 눈밑에 늘 드리워진 마누라  얼굴이 스친다. 지갑을 연다. 주변의 동기들은 육아도우미를 고용한다는데, 아내는 내키지 않아한다. 첫번 째 이유는 돈이고, 두번째 이유는 불안정한 애착때문이란다. 그렇게 붙어있는데도 왜 애착이 불안정하다는 것인지 장원장도 이해가 안간다. 본인은 오죽하랴. 아이는 하루도 빠짐없이 밤낮으로 엄마한테 붙어있다. 화장실도 못가게 한다. 돌 정도되면 분리불안이 생긴다고들 하지만, 6개월부터 1년 내내 그렇게 살고 있다. 아내는 몸이 망가지니 히스테리도 다양하게 부린다. 사람을 쓰라고 해도 싫다 하고, 도와줄 양가 부모님도  안 계신데. 왜 그렇게 타협을 못 하는건지 모르겠다. 결혼 5년 만에 겨우 가진 아기라서 더 그렇겠지.


 장원장은 집에 도착하기 전, 문자를 보낸다.

<나 지금 주차했어. 들어가도 될까?>

 바로 답장이 온다.

<기다려. 선우 이제서야 잠들었어.>

깊이 잠들지 않으면 집에 들어갈 수 없다. 아무리 소리를 죽여도 선우는 귀신같이 깬다. 소머즈같은 아내의 귀를 똑 닮았다. 8분이 지난 뒤, 문자가 온다.

<들어와.>


집에 들어가자 마자 아내에게 보란듯이 영양제를 내민다.

"이게 그렇게 좋다네. 비싼거다. 같이 먹자."

아내는 보는 둥, 마는 둥 빨래를 갠다.

"알았지? 지금 한 알 먹어라.응?먹어."

눈이 퀭한 아내가 쏘아본다.

"아,그냥 좀 놔둬!!먹어도 내가 먹고싶을 때 알아서 먹는다고. 나 지금 그거 먹을 힘도 없어!아,짜증나. 언제 자기가 그렇게 날 챙겼다고.날 생각하면 밤에 애가 깨서 울 때 한번이라도 좀 니가 안아주던가..."

개고 있던 수건을 쇼파에 던지더니, 방으로 쑥 들어가버린다. 애가 깰까봐 문을 쾅 닫는 것은 생략한 채.


 장원장 손바닥에 덩그라니 놓인 영롱한 초록빛 알약이 소리 없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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