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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Jan 07. 2018

장원장의 아내

 또 지진 꿈을 꿨다. 갑자기 바닥이 어지럽게  흔들리더니 아파트가 무너지는데, 창 밖을 보니 위에서 부터 한 층씩 부숴지며 떨어졌다. 단희는 선우를 안고 식탁 밑에 들어갔다. 쿠션을 머리 위에 대고 ' 이렇게 하면되나? 화장실로 가는 게 낫나?' 갈팡질팡했다. 심장이 요동친다.


 아파트가 위에서부터 각설탕처럼 하나씩 떨어지는데, 왜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했을까?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릴만 했는데. 창 밖을 보며 단희가 떠올린 것은 어이없게도 도마 위에 대파를 썰고 있는 장면이었다. 내가 아까 낮에 대파를 썰던 것처럼 우리 아파트가 짧아지고 있구나. 나는 이대로 죽겠구나. 우리 선우는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까?내가 어떻게 아이를 가려야 보호가 될까?난 죽고, 선우 혼자 남으면 우리 선우는  어떻게 되는거지?


 죽음이 코 앞에 닥쳤을 때,

"이녀나...이녀나!!"

 소리에 눈을 떴다. 선우다. 선우는 '일어나'라는 발음이 아직 시원치 않다. 욕하는 소리에 가깝다. 간밤에도 통잠을 못자고 울고 불고 전쟁을 치뤘는데, 왜 이리 일찍 일어난 것일까? 어쨌든 평소라면 이녀나 소리가 참 반갑지 않은데, 오늘은 덕분에 악몽에서 벗어났으니 나쁘지 않다.


 일어나자마자 메일을 확인했다.


<귀하가 보내주신 원고를 검토하고, 출간가능성 평가를 위하여 회의를 거쳤습니다. 좋은 내용의 원고이나 저희 출판사와 방향이 맞지 않아 안타깝게도 출간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


 오늘도 역시 거절메일이 와있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방향이란 어떤것인지 . 처음에는 '방향'이 뭘까에 온 집중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내 '방향'이란 것은 그저 거절하기 덜 미안한 핑계라는 것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어릴 때부터 열심히 아르바이트도 하고, 서울에서 내놓으라 하는 명문대의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 치과의사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친구들은 마치 단희가 인생의 로또를 만난 것처럼 인생역전이라는 양 얘기했다.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단희는 남편과 결혼을 한 것인지, 빚과 결혼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월세방을 벗어났지만, 집을 사면서 다시 빚이 생겼고, 열심히 갚아나갔지만, 개원하면서 다시 빚이 생기고. 남편이 전문직이라 좋겠다며 시기하는 친구에게 전문직의 부인이라고 다 편히 사는건 아니거든 쏘아붙이고 싶었다. 그래도 착실히 살고 있으니 곧 숨통이 트이겠지. 돈이 별로 없어도 행복할 수는 있었는데, 아이를 낳으면서 단희는 회색빛 늪에 빠졌다.


 밤낮으로 울기만 하는 선우를 달랠 재간이 없었다.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선우는 왜 자면서도 악을 쓰고 울지? 내  육아태도가 그렇게 최악인가? 임신 때부터인가? 끊임없이 안으라는 요구에 허리가 펴지지 않을 정도로 안아줘도 애착관계가 왜 불안정하지?


 단희는 오늘 신경정신과에 예약을 했다. 이럴 때 맡길 부모님이라도 계시면 좋은데, 친정엄마는 몸이 아프고, 시어머님은 안계신다. 어쩔 수 없이 선우를 업고 집을 나선다. 병원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도저히 용기가 안나서 뒤돌아 가려던 참에, 갑자기 문이 열리고 젊은 여자가 코를 훌쩍이며 나온다.

"에고.깜짝이야......"

단희보다 더 놀란 그 젊은 여인은

"아,죄송해요......"

라며 고개를 숙인다. 죄송할 것은 없는데. 오히려 그 여인 덕분에 어영부영 병원에 들어갔다.


 여러가지 검사를 했다. 중등도의 우울증이란다. 단희는 되물었다.

"중등도요? 저는 한 번도 죽고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데요."


 남의 일 같던 우울증이 단희에게도 찾아왔다. 왜 예상을 안했겠냐만, 정작 의사 입에서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이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때 마침 낮잠에서 깬 선우가 낯가리는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의사가 하는 말의 반은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항우울제를 처방받고 주기적인 심리상담도 권유받았다.


 전쟁같은 하루를 보내고, 아이도 재웠지만 언제 깰지 모르는 불안한 기운을 느끼며 빨래를 갠다. 남편이 퇴근했다.  들어오자마자 단희에게 불쑥 검은 비닐봉지를 내민다.


"이게 그렇게 좋다네. 비싼거다. 같이 먹자."

매일 밤 아이가 우는 소리에도 코골며 푹 자는 남편의 무관심이 떠올랐다.

"알았지? 지금 한 알 먹어라.응? 먹어."

"아, 그냥 좀 놔둬!! 먹어도 내가 먹고 싶을 때 알아서 먹는다고. 나 지금 그거 먹을 힘도 없어! 아,짜증나.언제 자기가 그렇게 날 챙겼다고. 날 생각하면 밤에 애가 깨서 울 때 한 번이라도 니가 좀 안아주던가..."


 단희는 개고 있던 수건을 쇼파에 집어던졌다. 남편 면전에 집어던지고 싶던 것을 꾹 참고.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선우의 얼굴을 살폈다. 너무 욱해 소리질렀지만, 지르는 순간 선우가 깰까봐 걱정됐다. 다행히 선우는 뒤척거리다가 금방 잠이 다시 들었다.


 선우가 잘 때 조금이라도 자야 한다. 눕는 순간 문자가 왔다. 후배가 쓴 책이 출판됐다며 책을 한 권 보내준다고 주소를 알려 달란다.


<축하해^^ 우리집 주소는...> 문자를 쓰는 순간, 단희는 참았던 눈물이 쏟아진다. 계획대로 라면 단희의 책이 출간될 시기였다. 계약서에 싸인을 하기 전, e북 인세를 좀 높여달라는 요구에 편집장은 매몰차게 돌변했다. 단지 그것때문만은 아니었을테다. 단희의 원고가 마음에 쏙 들었다면, 어떻게든 설득했을 일이다. 원고가 부족해서 고민하던 차에 '옳다구나 .'하고 건수를 잡은 것이겠지.


 생각대로 살기, 참 어렵다.

 

 거실에서 남편의 인기척이 없어졌다. 살금살금 나가보니, 초록색 영양제 한 알과 물 한컵이  식탁 위에 놓여있고, 남편은 쇼파 위에 누워 잠이 들었다. 갑자기 그의 몸이 쪼그라든 것처럼 작아보였다. 영양제를 꿀꺽 삼키고 쇼파에 갔다.

"여보."

남편은 대답 없이 눈만 뜬다. 후드득  후드득. 단희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남편의 후줄근한 티셔츠에 번진다.

"매일 신경질만 부려서 미안해. 나 중등도 우울증이래. 나 내일도 오늘처럼 불행할까봐 잠들기가 무서워. 나 힘들어. 나 좀 도와줘......"

남편은 스르륵 일어나더니 단희 어깨를 안는다. 아무런 위로의 말도 못하고 그냥 토닥거리기만 한다. 단희는 울며 웃으며 묻는다.

"여보, 내말 들었어?뭐 할 말없어?"

남편은 한참을 눈만 꿈벅 거리더니 창밖을 한 번 보고, 다시 단희를 본다.

"......  니 내가 꺼내놓은 영양제 챙겨먹었나?"

"참내......"

둘은 울고도 웃으며 서로 껴안았다. 남편은 입을 열었다.

"오늘은 선우가 밤에 깨면, 내가 한번 안아볼꾸마. 선우는 늘 그랬듯이 날보면 더 울고, 그럼 니는 더 짜증 날거야. 그래도 내 너무 다그치지 말고 서툴러도 지켜봐도. 나도 선우랑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해."

대답 대시 단희는 다시 그를 꼭 껴안았다. 그날 밤, 선우는 오랜만에 기록적인 통잠을 잤다. 단희도, 장원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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