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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Dec 05. 2016

Victoria!다시 가고싶은 그 곳

Victoria ,BC, Canada

떠올리면 향수병이 생기는 곳이 있다. 4년도 아니고, 고작 4개월인데 캐나다 BC주의 빅토리아를 생각하면 아련하고 그립다. 벌써 11년 전의 이야기다.


나는 마땅한 이유없이 언니의 어학연수를 함께 따라가겠다고 졸랐다. 문과인 언니는 영어실력에 대한 갈망으로 어학연수를 무척 가고싶어했다. 이과인 나는 사실 영어공부라면 한국에서 토익,토플 공부를 주구장창 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 었으리라. 그럼에도 마지막 휴학의 기회를 놓치기 싫었고, 여행인듯 여행아닌 새로운 곳에서의 삶을 꿈꿨다. 운이 좋게도 당시에는 부모님의 경제력이 나의 어학연수까지 뒷받침해줄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었다.(그 뒤로 집안사정이 급격히 안좋아져 어머니는 좋은시절의 마지막 혜택을 내가 누린거라고 늘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빅토리아에 도착한 첫 날, 우리는 이불속에서 부둥켜안고 소리죽여 울었다. 


그 날, 비행기는 심하게 연착되어 밤늦게 공항에 도착했고 낯선 홈스테이주인과 만나, 불편한 트럭을 타고 이동했다. 설렘은 사라지고 두려움은 커진 채 어떤 집에 도착했다. 어둡고 추웠다. 불안하고 무서웠다. 자신이 없었다. 스물세살의 우리는 마치 세살로 되돌아간 것처럼 엄마에게서 뚝 떨어져 무인도로 와버린듯 울고싶은 심정이었다.


다음 날 아침 홈스테이맘 Donna와 얼굴을 마주했을 때는 너무 낯설고 어색했지만 , 밝을 때 보니 그집은 내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고 예뻤다. 


 혼자 살고있는 Donna는 영어회화에 서툰 우리를 위해 단어 하나하나 힘을 주며 천천히 이야기했고,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녀와의 대화가 편해졌다. 그녀는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정원가꾸기에 집중해있기도 했고, 조깅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많은 농담을 나눴고, 그녀는 우리를 funny korean twins 혹은 goofy 라고 불렀다. 애정넘치는 미소와 함께. 그녀는 간혹 밤이 되면 형식적으로 하루를 어떻게 보냈냐 의무적으로 물었고, 우리가 인터넷을 너무 오래하면 전화를 못써서 불편하다거나, 화장실을 쓰고나서 물기를 닦으라거나, 화장실 문은 사용할때만 닫고 평소에는 열어야한다고 잔소리도 했다.


나는 Donna를 인간적으로 무척 좋아했지만, 추운 날 난방이 전혀 안되는 방에서 오들오들 떨며 잠을 못이루거나, 저녁때 먹고 남은 음식을 다음날 점심 도시락에 그대로 싸줄 때는 너무 못마땅했다. 매일 아침 베이글만 먹어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똑같은 돈을 주고 어떤 학생들은 호화롭게 홈스테이 생활을 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춥고 배고프게 지내야하지 불공평한것 같았다. ㅡ훗날 언니는 나의 이런 불만이 너무 듣기 힘들었노라 얘기했다.ㅡ그럼에도 Donna와 goofy twins는 오순도순 잘 지냈다. 종종 그녀는  잘못된 표현을 바로잡아 주기도했고, 영어가 늘고있다며 격려해 주었다.


한번은 카누를 타자며 셋이 카누보트를 끌고 호수로 가는 길에 , 그녀가 들떠있는 얼굴로 이야기했다. 며칠 전 괜찮은 남자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며, 얼굴의 주름살이 무색하게 설레임 가득한 얼굴로 수다를 떨고있었다. 그 때, 어떤 회색빛 콧수염의 아저씨가 그녀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집에 놀러오라며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지나치더니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속삭였다.

"oh...that's him!"  

다행히 그도 싱글이었고, 그 뒤로 그들의 관계는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Vino 아저씨는 우리집에 놀러오기도하고, 식당에서 다같이 밥을 먹기도했다. 아저씨는 쾌활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4개월의 빅토리아 생활을 끝내고, 다른 종류의 교육을 위해 Langley로 옮기면서 Donna와 눈물의  작별을 했다.

타지에 뚝 떨어지면, 주변의 사람들이 나의 오랜 지인들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여행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도, 여행할 때 만큼은 가족처럼 느껴진다. 여행도 그런데 하물며 어학연수는 더욱 그렇다. 한국에 돌아가면 사라질 수도 있는 관계의 가능성을 감지하면서도, 있는 힘껏 정을 준다. 헤어질 때는 연락처를 주고 받고, 우리가 마치 다시 볼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한국에 와서 내 생활에 집중하다보면 다시 나의 오랜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고, 그 조차 지키기도 힘들다. 멀어져간다. 스물세살의 나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내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데도, 가해자가 없는 피해자의 마음으로 상처를 끌어안고 어쩔줄 몰라했다.

어학연수시절 친했던 언니들,동생들,외국 친구들, 그리고 Donna 모두 몇 년사이 연락이 끊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한번 그곳에 다시 가고싶은 이유는 많다. 맑은 하늘, 쾌청한 날씨, 슈퍼에서 마주칠 때 hi~하며 웃는 사람들, 그 곳만의 냄새, 길거리 간식, 눈물나게 맛있는 타이레스토랑. '내 귀가 드디어 트였나? '하고 하루 종일 웃음나게했던 GAP앞의 건널목, 어학원 밑의 맛있는 모카커피, 할로윈 호박과 애플사이다의 추억, 겨울이 되면 반짝반짝 예쁜 조명들...



그 때는 몰랐다. 지나고보니 그 시기가  내 인생 제 1의 황금기였다. 제2의 황금기는 언제 올까?지나고보면 바로 지금 이순간일지도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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