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잠도 못 잔 채 월요일을 맞았다. 아니 사실 주말 내내 잠깐 일어나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누워만 지내다가 일요일 밤에 컴퓨터 앞에 앉아 그대로 날이 샌 것이니, 한잠도 못 잤다고 하기엔 찔리는 구석이 있긴 하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주말의 잠은 지난주에 못 잔 만큼을 보충하는 것이니, 그건 밀린 대출 상환에 해당하는 잠이지 미리 저축하는 잠이 아니다. 갚아야 할 빚이 생긴다는 건 평생 구멍을 메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는 것, 잠의 세계도 돈의 세계와 마찬가지다. 주중에 내 몸뚱이에 진 수면 빚을 청산하기엔 주말의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그리하여 늘 아직 갚지 못한 빚 위로 새로운 빚이 얹어지는 월요일은 묵직한 수면 부채감에 짓눌린 채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부터 한잠도 못 잤다는 거대한 부채감에 짓눌려 둔해진 뇌세포를 커피로 강제로 깨우고는 오늘 방송의 오프닝과 퀴즈 아이템 등등을 물색하려 달력을 보니 오늘이 ‘대서’ 절기란다. 큰 더위. ‘大暑’라는 단순명료한 이름이 굳이 달력 위에서 친절히 안내해주지 않아도 이미 날씨가 우리에게 최선을 다해 이 절기 이름을 알려준 듯하다. 그래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절기지만, 그래도 뭔가 뽑아낼 글감이 있을까 해서 포털 검색창에 ‘대서’를 쳐보니 ‘24절기 중 열두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라는 문구에 눈길이 꽂힌다. 이미 6월에서 7월로 넘어올 때 올해의 반이 지나갔다는 충격에 한 번 사로잡히긴 했지만, 1월을 시작점으로 본 한 해의 반과 ‘입춘’을 시작점으로 본 사계절의 절반 지점이라는 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시간 감각이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주말 사이 가족 단톡방에 조카의 통지표가 올라왔던 게 생각났다. 과목별 ‘평가 결과’란이 ‘잘함’, ‘보통’, ‘노력’ 중에서 전 과목 ‘잘함’에 동그라미가 쳐진 초딩 아들내미의 성적표를 자랑스럽게 올리며 “우리 때로 치면 올 수”인 거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덧붙여주신 내 오빠의 팔불출미에 ‘엄지 척’ 이모티콘으로 장단 맞춰 주면서, 덕분에 나도 ‘수우미양가’를 벗어난 요즘 아이들의 성적표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되었고, 이 무렵에 초등학생들이 방학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통지표의 제목이 ‘성적 통지표’나 ‘생활 통지표’가 아니라, ‘성장 통지표’라는 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래, '성장 통지표'라면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계속 정기적으로 발행되어야 할 것 같은 이름이 아닌가. 학교를 졸업했다고 우리의 마음 성장이 멈추는 건 아니니 말이다. 어쩌면 시간이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 게 통지표로 매 학기를 정리하던 의식이 사라진 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제때 마디를 그어두지 않으니 정신 차려 보면 몇 년의 시간이 통으로 흘러가 있는 게 아닌가!그렇다면 24절기의 절반 지점, ‘대서’ 절기에 필요한 세시의식은 차분히 지난 계절을 돌아보며 나의 ‘성장 통지표’를 작성해보는 일이 아닐까?
그런데 사실 조카의 ‘성장통지표’는 띄어쓰기가 안 돼 있어서 처음 내 눈엔 그게 ‘성장통 지표’로 읽혔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성장엔 성장통이 따르기 마련이니 '성장 통지표'가 곧 '성장통 지표'인 건지도. 나의 지난 열두 절기 ‘성장 통지표’엔 ‘잘함’보다는 ‘잘 견딤’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듯하니 ‘성장통 지표’라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장 통지표’든 ‘성장통 지표’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우리에게 중요한 건 예나 지금이나 ‘통지표’가 아니지 않은가. ‘통지표’와 함께 오는 ‘방학’이 핵심이지.
그래, 맞다. 1년 중 가장 더운 시기라는 이 절기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 결국 ‘여름 방학’인 것이다. 매일 반복되던 일상과 책무감에서 잠시나마 해방되어 일단은 설레고 무작정 신날 수 있는 시간. 물론 개학이 다가올 때쯤 밀린 방학숙제가 얼마나 크고 묵직한 부채감으로 다가오는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은 숙제를 미룰 수 있다는 해방감이 훨씬 더 크고 짜릿한 행복이지 않았던가. 지금까지도 ‘여름 방학’이라는 말에 일단 설렘 세포부터 자동으로 깨어나는 걸 보면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더운 계절이 돌아오면 일단 어디론가 떠날 계획을 세우는 게 아닐까? 돌아온 후에 더 큰 부채감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일단은 이 여름을 즐기라고, 그래야 무사히 건너갈 수 있다고. 24절기를 배우기 이전에 해마다 몸과 마음에 새겨진 ‘여름 방학’의 추억이 우리에게 먼저 가르쳐준진리가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