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안은 아이가 떠들어도, 어른이 보는 영상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게 아니라 아예 이어폰을 안 켜도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승무원의 친절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는데도 준비한 간식을 나눠주고, 안전벨트를 점검했습니다. 미리 태국 맥주 한 잔을 따르며 크게 눈에 거슬리지도, 거슬려하지도 않은 이미 태국 같은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그러면서도 카트가 더 넉넉했으면, 카트 앞이 한국처럼 막혀 안전했으면, 짐이 더 빨리 나오고, 입국장이 넓어 쾌적하게 빠져나왔으면, 공항 외에도 공공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었으면. 한국의 빠르고 편했던 시스템을 은근 바라기도 했습니다.
3시 아이 그림 수업을 예약해 두고, 밥을 30분 뒤에 되도록 (존재만으로도 기특한) 1인용 쿠쿠밥솥에 눌러두고, 수영장에 누웠습니다. 1시에 온다는 집기 체크 직원은 왜 안 나타나시는지, 마트 가는 셔틀은 예약해야 하는 건 아닌지... 매 순간 시간과 효율을 따집니다.
자유롭게 놀자! 는 아이의 말을 저는 도저히 듣지를 못하네요. 이런.
일요일이고, 한국은 폭설이 내려 관저 앞에는 은박 담요를 덮고 윤석열 퇴진을 외친 은박천사들의 뜨겁고 차가운 소식이 계속되는데, 긴장, 급박함, 제 때에 익은 몸과 마음은 영 여유를 챙길 수 없네요. 도착 첫날 충분히 누려도 되건만요.
타이항공의 분위기를, 이곳의 분위기를 여행의 이유를 생각합니다. 생각 않고 느낍니다.
수영 후 즐기는 이 온기와 여유를 저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깃들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