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림으로 여행 취미를 삼은 건 오영욱 작가의 건축 그림책 덕이었다. 사진 프레임 속의 대상이 아닌 내 몸에서부터 내 시야에서부터 들어오는 것들을 넣는 그림. 여행도 그 무렵 시작이라 홍대 호미화방에서 산 수채화색연필과 작은 도화지를 여행 갈 때마다 꼭 챙겼다.
여러 색을 다 쓰다 보면 촌스러워져 색도 하나로 통일해 보고 펜으로도 바꾸어보기도 했는데...
긴 여행에 찡찡대는 아이에게 동네 문구사에서 들러 휴대용 팔레트와 수채화 색연필을 사주고 보니 내가 더 즐긴다. 아이는 “엄마 그림 잘 그린다~”라며 감탄한다.
그래, 나 그림이 취미였다. 미술동아리였다. 아이 낳은 뒤부터 내 색연필 챙길 여유는 없었는데! 피켓에 그림을 그리는 정도가 취미를 떠올리게 했을 뿐. 즐기진 못했다.
얼마 전 “언니, 그림 취미 요즘 어떤가요? “ 지인이 물었을 때 새삼스럽기도 했다.
여행을 시작하고 아이 필통에 든 색연필로 새벽에 할 일 없어 그림을 그리고 보니 좀 재밌었다.
캄 빌리지 도서관은 아름다워 커피를 찬찬히 음미하며 즐길 수 있지만 이렇게 그림을 그리며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면 앉는 자리가 달라지는데 남편은 좋은 풍경이 속에 자리 잡고 나랑 아이는 좋은 데를 바라보는 선택을 한다. 고심이 골라 코너 구석에 앉는 선택도.
올드시티 인도에 앉아 사원을 그리던 분 분 역시 편한 곳이 아닌 그림 그리기 좋은 곳에 앉았다..
그림 그리면 또 좋은 점은 그림 완성 때까지는 핸드폰을 안 하더라는 것. 그림 그리기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재미에 들어.
매일 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로비는 꼭 그리고 가려한다. 그림보단 그리던 순간이 기억엔 오래 남으니까. 간지러운 모기, 매연과 담배냄새, 오토바이 소리, 밤의 선선한 바람까지도.
+ 반캉왓 예술마을에 가서 아이랑 도장찍기, 콜라주를 했다. 숙소에선 엽서에 색칠하기도... 틈틈히 즐기는 미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