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것들이 말해주는 것
볕 좋은 주말 오후, 아내와 나는 큰마음을 먹고 창고 깊숙한 곳을 정리하기로 했다. 더는 입지 않는 옷가지와 지금은 쓰지 않는 육아용품들을 정리하고자 큰 마음을 먹고 상자 하나씩 들어냈다,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쓴 상자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무심코 상자를 열어본 아내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끝을 따라가 본 내 시선 끝에는, 빛바랜 캠핑용품 사이에서 돌돌 말려 있는 낡은 그림 한 장이 있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우리 가족 키 재기’라 쓰인, 우리의 가족이 지나온 시간 그 자체였다.
키가 기록된 종이를 펼치자 10년도 더 된 과거의 공기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아들이 막 걸음마를 떼고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던 시절, 우리는 이사 온 집의 주방 한쪽에 아이의 키를 처음으로 붙여놓았었다. “우리 아들, 이만큼 컸네!” 연필로 그은 희미한 선 하나에 아내와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다. 몇 해 뒤 딸아이가 태어나고, 어느새 오빠의 키 성장을 따라잡았을 때, 키재기에는 새로운 이름 하나가 더 새겨졌다.
갑자기 아이가 키가 커보이거나 대견한 행동을 하면 함께 키를 재는 것은 우리 가족의 성장을 평가하는 기분좋은 행사가 되었다. 빨간색은 아들, 파란색은 딸. 삐뚤빼뚤한 선 위로 날짜와 숫자가 겹겹이 쌓여가며 낡은 종이의 키재기는 우리 가족의 가장 정직한 역사책이 되어주었다.“이거 봐, 이제는 아빠랑 키가 거의 비슷하네.” 하늘처럼 높아보였던 아빠의 키와 점점 가까워지는, 지금은 중3이 된 아들의 기분좋은 외침이 아직도 귀에 들리는것 같다.
내가 키재기 종이를 들고 거실로 나가자,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던 아들이 흘깃 쳐다보며 무심한 척 웃는다. “와, 이건 내 이름이네!” 이제는 제법 숙녀 티가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는 신기한 듯 다가와 자신의 이름과 가장 낮은 곳에 그어진 선을 손가락으로 짚어본다.
아이들의 눈에는 그저 낡은 종이에 그어진 여러 개의 선으로 보이겠지만, 아내와 나의 눈에는 그 선들 위로 아이들의 지나온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처음으로 ‘아빠’라고 불렀을 때의 벅참, 두 발 자전거를 처음 타던 날의 위태로운 뒷모습, 친구와 다퉈 엉엉 울며 집에 돌아오던 날의 속상한 얼굴까지. 이 낡은 그림 한 장은 우리가 함께 웃고, 울고, 성장하며 빼곡히 채워온 시간의 지도였다.
정리를 하다 보면 수많은 ‘오래된 물건’들을 마주하게 된다. 대부분은 망설임 없이 버려지지만, 차마 버리지 못하고 다시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는 것들이 있다. 낡고 해져서 더는 쓸모가 없어진 그것들은, 물건이 아닌 시간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빛바랜 키 재기 그림 한 장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괜찮아, 아빠도 엄마도 너희도 모두가 처음이지만 이렇게 서로를 사랑하며 잘 성장해 왔으니 앞으로도 평생 문제없어!!"
결국 우리는 그 낡은 그림을 버리지 못했다. 언젠가 아이들이 훌쩍 자라 이 집을 떠나게 되는 날,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 더 많은 시간이 쌓이는 날, 문득 이 그림을 펼쳐보며 오늘을 추억하게 될 것이다. 낡은 것들이 주는 위로란 그런 것이 아닐까. 잊고 있던 가장 소중한 순간을 불쑥 눈앞에 데려다주는 것. 덕분에 창고 정리는 뒷전이 되었지만, 마음만은 가장 소중한 것들로 가득 채워진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