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하루 24시간 중, ‘나’로 존재하는 시간은 몇 분입니까?

by 민토


​알람 소리에 눈을 뜨는 순간, ‘나’라는 존재는 증발하고 ‘역할’만이 남는다. 출근 준비를 서두르며 현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나는 거대한 조직의 부속품으로 변신한다. 회사라는 정글 속에서 나는 누군가의 부하직원이어야 하고, 동료들의 협력자여야 하며, 팀원들을 이끄는 팀장이어야 한다. 나의 감정과 의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성과와 책임, 그리고 조직의 논리만이 내 하루를 지배한다. 점심 메뉴 하나조차 내 맘대로 고르기 힘든, 철저히 타인에게 맞춰진 시간들. 그렇게 영혼을 갈아 넣으며 하루를 견딘다.


​오후 5시, 퇴근 시간은 또 다른 출근 시간이다. 회사의 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틈도 없이 ‘가장’이라는 명찰로 바꿔 단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지만은 않다. 현관문을 열면 나는 자상한 남편이어야 하고,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거나 놀아주는 좋은 아빠여야 한다. 아내의 집안일을 돕고, 가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늦은저녁 학원을 마치는 아들을 데리러가 집에가지 못 햐채 차에서 졸고 있는 나를보며 가끔 스스로가 안타까울 때도 있다.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는 현관 밖에서 털어내고 들어와야 한다는 강박 속에, 나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또 다른 ‘미션’을 수행한다.


​그렇게 모든 일과가 끝나고 가족들이 하나둘 잠자리에 들 때쯤, 시계바늘은 이미 자정을 향해 있다. 그제야 찾아오는 고요함. 하지만 그 시간의 나는 이미 폐허가 되어 있다. 육체적 체력은 바닥났고,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느낄 정신적인 의지마저 소진되어 버렸다. 남은 것은 오로지 ‘자야 한다’는 생존 본능뿐이다. 내일 또다시 그 지독한 굴레를 굴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눈을 감아야 한다는 강박.


​문득 어릴 적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안방 문을 닫고 하루 종일 잠만 주무시던 아버지. TV에서는 그런 아버지를 ‘소파와 한 몸이 된 게으른 가장’, ‘가족과 소통하지 않는 불통의 아이콘’으로 묘사하곤 했다. 어린 나도 생각했다. ‘아빠는 왜 우리랑 안 놀아줄까? 왜 잠만 잘까?’ 하지만 마흔이 된 지금, 나는 비로소 그날의 아버지를 사무치게 이해한다.


​아버지에게 잠은 게으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처절하고도 적극적인 ‘회복’의 몸부림이었다. 세상 모든 관계가 끊어지고, 누구도 자신에게 “이것 좀 해줘”, “저것 좀 처리해”라고 요구하지 않는 유일한 시간. 꿈속에서나마 가장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그 시간만이 아버지 스스로에게 허락한 유일한 ‘나만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잠을 자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잠은 너덜너덜해진 육체 근육을 붙여줄 수는 있어도, 마모되어버린 마음의 구멍까지 메워주지는 못한다. 우리는 육체의 피로보다 정신의 허기에 시달리고 있다. 아무리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은 공허함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정신적 회복’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회복은 단순히 눈을 감고 기능을 정지하는 것이 아니다. 깨어있는 상태에서 오로지 ‘나’를 느끼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이 ‘단절’에서 온다고 믿는다. 회사와 가정, 친구와 동료… 나를 둘러싼 모든 외부와의 연결 통로를 잠시 끊어내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끄고, 누구의 호출에도 응답하지 않는 ‘비행기 모드’의 시간이 우리에게는 절실하다.
​타인과의 관계, 타인의 시선, 타인의 기대로 이루어진 세계관에서 탈출해야 한다. 그곳을 벗어나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작은 우주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늦은 밤 차 안에서 듣는 음악일 수도, 아무도 없는 새벽 공원을 달리는 일일 수도, 혹은 낚싯대 하나 드리우고 물멍을 때리는 시간일 수도 있다.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아빠’, ‘어느 회사의 과장’이 아닌, 그저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순수한 ‘나’로 존재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할 때 웃는지, 어떤 음악에 위로받는지, 내 마음의 온도가 지금 몇 도인지 살피는 시간. 이것은 사치가 아니다. 이것은 생존 전략이다.


​나를 잊은 채 타인만을 위해 연료를 태우다 보면, 결국 엔진은 멈추게 되어 있다. 내가 무너지면 내가 지키고자 했던 가정조차 지킬 수 없다. 그러니 부디 죄책감을 갖지 말자. 하루 24시간 중 단 한 시간, 아니 30분이라도 좋다.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혹은 모두가 잠든 새벽을 훔쳐서라도 나에게 선물해 주자.


​일과 가정과 나의 균형, ‘워라밸’을 말하지만, 정작 그 균형추에 ‘나’는 빠져 있지 않은가. 타인을 위한 희생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내가 행복해야 내 가족도 행복하다. 나의 자존감이 단단해야 세상의 풍파로부터 내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


​오늘 하루, 당신은 당신 자신과 몇 분이나 대화를 나누었는가.


오늘 밤에는 잠들기 전, 단 10분이라도 좋으니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그것은 내일 또다시 전쟁터로 나갈 당신에게, 당신 자신이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로이자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이전 02화내 마음속 다락방